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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을한책읽기

독서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26.
어제 저녁 7-9시. 창원도서관(창원 교육단지내) 별관 2층 3강의실에서 '창원시한마을한책읽기추진위원회' 창립식이 열렸다.  한 40여분이 참석한 것 같고, 다른 모임과의 차이는 1-2분 정도가 중간에 나가신 것 외에는 대부분 자리를 시간보다 일찍와서 지키셨다가, 끝까지 남으시고, 정리까지 마치시고 아쉬워하며 떠나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서로 그리 잘 아시는 분들은 아니나, 그래도 오랜 기간 뜸뜸이 만나면서 서로 간에 신뢰를 쌓으신 분들이라는 점이다.


경청중인 박종훈교육위원(공동대표),이찬호창원시의원(추진위원)/ 창원시한마을한책읽기추진위원회창립식및 토론회/창원도서관/2009.9.25



필자는 어제 기념 토론회에서 책읽기의 사회적 유용성을 발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30분 정도의 발표이나, 생각해보니, 우리가 책을 접하고는 살면서도, 왜 책을 읽는지, 책을 읽으면 사회가 바뀌단고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다. 


어제 김해시의 한도시 한책읽기 정책을 담당하시는 분이 오셔서 김해시의 책 선정의 배경을 김해시의 역사적 정체성, 그리고 인간성의 고양과 가족애의 재발견등을 순차적으로 주제로 정하여 책을 선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나는 얼핏 생각 나는 것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선정한 "분노의 포도"였다.  1930년대 불황기에 농민들이 농토를 빼앗기고, 떠돌면서 남의 농장에을 전전하면서 발생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이 책을 선정하면서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자부심 등을 나열한 것 같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비극이 과연 애정이나 자부심을 가져올 수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금융위기에 이은 경제위기의 국면에서 대부분, 더욱더 남을 배신하고 이용하고, 남의 손해가 나의 이익이라는 전략을 강요하고 있는 현금의 세상에서는 이러한 책이 갖는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미국은 이제 어느 정도의 협력이 가능한 개인주의,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이타주의는 아닌 그런 세상에서 선택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경우는 배신자가 그리고 남에게 해를 주는 자들이 이익을 취하고 잘 살고, 출세를 하는 세태를 보면서, 우리는 더욱더 가족과 동창과 같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극히 소수의 관계를 중시하고, 이를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이럴 경우라고, 대개는 완전한 이타주의나 극단적 이기주의를 가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부모는 자녀에 대해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고, 나중에 이것 이상으로 되받으려는 심산, 그리고 자녀는 부모에 대해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다시 자녀에게 줌으로써 부모에 대한 돌봄은 소홀히 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완전한 이타주의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통한다.  이럴 경우 그 범위가 좁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념토론회/창원도서관/좌측부터 홍미선(김해시평생학습지원과)/진광현(경남정보사회연구소이사)/이은진(경남대교수)/이종은(추진위운영위원장)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꼭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아니지만, 미국의 정치학자 알셀로드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결론을 내린 "신뢰로 시작하여 즉각적인 보복을 하는 전략"이 가장 우세한 전략이라고 진화론적인 관점을 주장하였다([협력의 진화]라는 책에서). 

그러나 좁은 범위에서는 극단적인 배신의 사회도 우세한 전략이라고 지적하면서 다만, 신뢰와 보복의 전략으로 이루어진 사회와 극단적 배신이 팽배한 사회가 만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신뢰와 보복의 사회가 압도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완전히 성인군자가 되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자신을 알고 남을 알기 위한 것, 그리고 일단 이웃에 대한 신뢰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 그러나 남이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점, 그러나 원한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점(장기적인 보복이 아닌 배신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 상대방을 착취하여 이기려는 전략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 되지 못하고 진화론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y)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말자, 그러나 일단 믿고 시작하자, 배신하면 나도 배신한다, 그러나 길게 배신하지는 말자, 상대방의 손해를 노리지는 말고, 같이 이익을 보는 것을 생각해 보자 등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이 그다지 성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이웃과 같이 사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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