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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2010 활동

벚꽃길 40리와 함께한 동행(안민역에서 웅천 보평역까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13.

벚꽃길 따라 창원 안민역에서 진해 보평역(웅천동)으로 오가는 옛길 다녀왔습니다.
다시 봐도 이쁘네요^^
이야기가 있는 옛길걷기 4월 11일 동행입니다.
함께 하시죠~~


함께하지 못한 동행인들~~
사진 보면 배 아플걸요^^ 

창원 성주사역에서 모여 안민고개 들머리로 향합니다.


안민고개에서 보평역으로 오가는 고갯길은 안민고개 들머리에 있는 분성배씨정려비를 지나게 되는데 열녀 배씨는 옛 안민 사람으로 지아비 박경천이 죽자 뒤를 이어 스스로 목매 죽은 열행으로 순조 14년 갑술(1814년)에 정려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안민고개 들머리에 있는 분성배씨정려비


정려비 앞쪽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안민고개로 올랐을 옛길로 추정되나 지금은 그곳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봄과 함께 안민고개를 오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봄은 처음이라 달콤쌉싸름 했답니다.


뭐라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장복산의 봄 풍경


우리나라에 산다는게....행복합니다....이 순간만큼은...


이 고개는 삼포왜란과 임진왜란 두번의 큰 전투를 맞았다고 합니다.
세월을 품어 애환을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한 모양이 꼭 우리들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이 곳을 지나면 진해시로 진입하게 됩니다.



벚꽃이 달라 보이나요?

진해입니다.

드림로드를 걷기 위해 내려갑니다.


안민고개를 온전히 넘지 않고 드림로드와 이어지는 옆길로 이동합니다.


진해시에서 임도를 새로 꾸민 드림로드를 따라.....먼저 온 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굴곡 없는 길이라 지루할만하지만...꽃님들 덕분에 기분은 룰루랄라....


어디선가 뵌 적이 있는 듯..오래 알고 지낸 듯한 부부입니다. 오늘 처음 동행에 참가하신 분들입니다.
하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어디선가 옷깃을 스쳤겠지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드림로드를 내려와서 진해 자은동으로 내려갑니다.
맞은편은 안민고개 벚꽃길입니다.
지도에 빨간줄 긋지 않아도 하양이 도로임을 알수 있습니다.




대충 아무데나 들어가면 되지 멀리까지 간다고...맛없으면 두고 봐라며 뒤에서 투덜거렸는데...
(앞잡이가 연구소 이종은 소장이었습니다.)

발품도 아깝지 않고 밥값도 저렴하고...
밥값의 곱절은 맛있는 착한 밥집이었습니다.


독점제와 태봉이 있는 장천동으로 다시 길을 나섭니다.

사비선은 구 진해화학의 전용 철도로, 진해화학을인수한 한화L&C가 비료사업 철수 선언과 함께 해체되었으며, 진해역에서 분기하며, 길이는 6.5km이다.주로 황산이나 석회석같은 원료들을 실어날랐었다.



진해시청과 시의회


태봉은 진해시 장천동 상리마을 남쪽의 해안 구릉에 있었는데 1963년 진해화확비료공장을 만들때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문화유적총람에 가락국왕의 태를 봉안한 태실이며 산정에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 것은 태봉이 유실되기 이전에 수집한 자료를 가감없이 수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태실]에는 진해화학공장 뒤의 구릉을 태봉산으로 소개하면서 특별한 유구나 전설은 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의 똥메를 그렇게 본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합니다.

유실된 태봉터로 추정되는 곳



조선의 태실에 태봉산으로 잘못 소개된 똥메(오른쪽 낮은 구릉)


[해동지도]에 이 길이 묘사될 당시에는 태봉을 의식하여 그 아래로 길을 내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의 국도 2호선이 된 신작로를내면서 웅산(곰메)에서 태봉으로 흐르는 맥을 잘랐다고 합니다.

출처/세월을 거슬러 길을 걷다-자여도(최헌섭 저)


태봉의 아래로 난 길을 안고 도는 길을 따라 큰발티에 오르는데 이 고개를 한자로 대발령이라 적고 대치-대현이라고 합니다. 동쪽의 소현과 짝을 이루는 큰 고개입니다.

대발령





대발령 쉼터


이 고개에는 행가선대부안동권씨신민유허비가 있어서 나무 심는 늙은이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데 이 일대가  죽봉 권신민의 유허지로, 이 고개에 느티나무를 심어 이를 정자 삼아 지내면서 사람들과 함께 물외를 심고 우물을 파서 돌보았다고 합니다. 자손들이 이 나무와 우물을 돌봐 왔는데 왜구가 고개의 맥을 잘라 도로를 통하게 한 뒤부터 느티나무가 점차 말라 죽어서 자손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돌에 새겼다고 합니다.

행가선대부안동권씨신민유허비


우리의 전통도로는 태봉의 아래로 돌아가게 설정했으나 일제가 신작로를 내면서 태봉의 위쪽으로 도로를 내어 웅산에서 태봉으로 이르는 지맥을 악의적으로 끊었다고...
이 빗돌에는 도로의 효율성을 내세워 태봉을 도로보다 격하시키기 위한 왜구의 나쁜 뜻을 전한다고 ...




지금의 어은동 남동쪽에서 소현(소발령)을 넘게 됩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진해에 이런 벚꽃길이 있었네요...
이 벚꽃길을 따라 가면...


주을제가 나오는데 바로 이곳입니다.
[해동지도]에는 주이제로 나온 못이며 지금도 서중소류지란 이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근데 안내표지판에는 웅천소류지로 되어 있더라구요..

주을제(서중소류지)



주을제에서 단체사진


이 못의 맞은 쪽 도로가에는 이 근처에서 옮겨 온 선정비 10기가 있습니다.


그 옆에는 효자 주한혁의 정려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거리를 효자거리라 부른다고 하네요.

효자거리의 한혁 정려비


보평역은 조선시대에 신설된 역으로 다른 역에 비해 역마와 위전답의 보유가 낮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웅천현 역원에는 현성의 서문밖에, [여지도서] 김해진관웅천현 역원에는 보평역은 현 남문 밖에 있다고 전하는데 이렇게 역의 위치를 달리 적고 있는것은 역이 옮겨졌음을 시사한다고 합니다.(최헌섭 저 자여도 중에서)

중간에 있는 건물 뒤쪽이 보평역 지로 추정되는 곳


웅천의 작은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뒷풀이를 하고 집으로 갈 동행인을 제외하고 여좌천의 봄을 만나러 갔습니다.



세월을 거슬러 길을 걷다-자여도/ 최헌섭 출판기념회 2010년 4월 16일(금) 오후 7시 창원대학교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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