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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연구소의 자리 / 이은진

by 구르다 2005. 2. 26.

2005. 2. 26(토) 오후 3시 30분 - 4시 20분, 부곡 일성 콘도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수련회

이  은 진 (연구소 이사)

 


I.      객관적인 조건에 대한 적합한 대응이었는가?

1994년에 정보의 민주화는 당시의 전자매체의 범람에 정보 소비의 비주체성, 정보 생산의 종속성, 자율적 사회의 요구에 대한 대응을 위해 연구소는 설립되었다.

이후 지방분권이 실행되었고,

각종 지역단위의 문화, 정보, 복지, 청소년의 집, 주민자치센터 등이 개설되었고

창원지역의 경우에도 다른 단체에서 운영하는 마을사회교육센터가 30여개 설립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보 생산과 유통, 소비의 자율적 유통에 대한 물적 조건은 갖추어 졌으나, 이를 운영하는 주체, 그리고 운영시스템은 상당 부분 매우 취약한 상태(외부의 상황 변화에 쉽게 무너질 것 같은)로 남아 있었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에 따른 공공 사회교육에 대한 수요, 이후 자연과 사회적 위기를 느끼면서 공동체적인 대응을 모색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창원에서는 사회교육센터는 일단 그 제도 자체로서는 존립을 의심받지는 않게 되었다.

자료: 1994년, 95년도의 논의들

특히 95년 4월에 발간된 연구소 소식지,

1994년 말과 95년 초에 만든 “비젼 21, 마을을 열자! 미래를 열자!”의 20여 페이지 분량의 문건

 


II.      창원시 행정은 바뀌었는가?

창원시와 연구소의 관계는 적대적이면서 보완적일 수 밖에 없었다.  적대적이란 연구소의 목적 추구는 다른 한편 행정관료들에게는 물품 구입과 관변단체 동원력 면에서 권한 약화, 대외적 무능력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었고, 지역 정치인들(시의원, 잠재적 시의원후보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이들의 행정과의 교섭력, 주민 동원력을 약화시킨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창원시가 최근에 사회교육센터의 사업을 통하여 책문화축제, 평생교육도시지정, 마을도서관의 발상지로서 알려지고, 사회교육센터의 주민 참여력이 강함을 인식하면서 행정의 장악 또는 지원에 대한 경계심과 지각심을 높이고 있다. 

자료: 1995년 1월부터 사림동, 2월부터 봉림과 봉곡 복지회관에 마을학교 개설하였다.  이는 연구소에서 마을교사, 사서를 동별로 2명씩 파견하여 운영되었다.  당시 월 5백만원 정도까지 연구소의 자체 재정으로 지출되었다(이사들의 갹출금).

 


III.     우리 조직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유연하고, 견고한가?

연구소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부의 네트워크를, 자발적이든, 아니면 행정의 지시에 의해서건 아니면 타 사회단체의 침투에 의해서건, 상당히 확산적으로 구축해 왔다.  내부적으로도 사적인 이익에 의해서건 아니면 참여의 즐거움에 의해서건, 공동선을 위한 시민행동으로서건 참여의 폭을 넓히고, 내부적인 개인적 네트워크를 확산시켜왔다.  이러한 전략 자체는 높게 평가한다.  1994년에 연구소의 발기에 참여한 인사들이 대부분 떠난 상황에서도 연구소가 생존한 이유는 바로 상이한 개인들이 연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적 충원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연구소의 목표가 항상 뚜렷한 것은 아니었지만, 도서관운동, 마을 공동체 운동, 민간파트너쉽사업, 평생교육 등이 지금까지 연구소 사업의 목표로 내걸은 것이었다.  지금 현재에도 연구소의 목표를 하나의 슬로건으로 담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연구소의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는 비지배(인간사이의 지배관계), 시장의 비인간적 경쟁을 배제하고, 시민간 유대, 사회적 신뢰, 자율과 관용(대화와 타협)을 지향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와 같은 사업의 필요성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잘 살게 되면 될수록, 아니 시장질서의 힘이 강해지고, 국가의 힘이 강해지면 질수록 더욱 필요해지는 덕목이다.  이런 면에서 연구소 내외부적으로 시민적 덕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직내부적, 그리고 조직외부 상황에 대한 대처에서도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자료: 연구소 6주년을 맞이하여 쓴 이은진의 글(2000년 10월)

 


IV.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책임감이 있고, 참여적이고, 숙고하면서 일을 하는가?

연구소의 조직은 결국 조직에 속한 개인들의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개인들은 실무자들이 핵심이며, 이를 둘러싸고 이사장님과 연구소운영위, 이사들이 있으며

센터별로는 센터 운영위원장님, 운영위, 소모임장들과 소모임 회원들, 강사와 이용자들로서 구성되어 있다.

개인들 사이에 의사소통은 항상 중요하지만, 원활한 의사소통은 한 번에 결정되고, 반박이 없고, 의견제시가 없는 의사소통이 아니라 서로 간에 협의 반박 토론이 이루어지고 결정이 되어 이를 수용하는 속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해진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저의 기억에도 즐거운 날보다는 불만과 고민의 나날이었다고 회고할 수 있다.  연구소가 지금까지 불명확한 조직적 목표, 개인에 대한 보상의 부족과 불안정한 자리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의사소통을 가능케한 기술적 기반, 조직적 기반, 그리고 인적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조직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연구소의 협력조직을 강화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시키며, 연구소의 핵심 역량은 협력 조직을 관리하고, 기획하는 업무를 맡는 형식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  현재 참여연대는 하부조직들은 법인이지만, 핵심조직은 임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하부 조직은 자율적인 재정, 인사, 사업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

이는 네트워크의 확산을 통하여 사업의 확산, 참여와 자율적 운영을 촉진시키고, 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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