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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책을 읽는 것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2. 13.
오늘 임진란 이후에 백성들의 독서 실태에 대한 글을 읽고 있다.  소리를 내어 읽는 글에서 눈으로 읽는 독서 행태의 변화,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글을 읽으면서 독서 카드를 기록하는 형태로까지 나아가는 행태를 살피고 있다.  대개 전쟁이 발생하면 기존의 신분과 국가 질서는 무너지고, 따라서 기존 질서를 고수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세력 간에 전방위적 투쟁이 일어난다. 

즉 경제적으로는 이동의 자유와 명, 후금, 청, 왜가 조선반도에 들어오면서 파생시킨 은의 유통, 이국물자의 보급, 새로운 문물의 등장, 장거리 이동에 의해 눈을 뜨게된 바깥 세상과의 교류, 농업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 등이 발생하여 새로운 사업기회가 나타나고, 이런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세력들은 대개는 양반세력들이 아니라, 중인계급에서 나타나게 마련이다.  양반들은 일하는 것을 폄하하는 주자학적 세계에 사로잡혀 있고, 일을 하는 순간 양반으로서의 예를 잃어버리게 되어, 사회적으로 양반자격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중인들(대개는 현재적인 의미에서 기술자들, 국제무역, 의사, 법률, 약사, 산술학자, 역학자 등)은 양반들의 노동폄하적인 행태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직업적 이익을 독점한다.



양반들은 전쟁중에 잃어버린 자신들의 정통성을 되찾기 위해 절치 부심한다. 
즉 이들은 의병들, 이순신이나 권율과 같은 임진란 중의 영웅들을 낮추고 대신, 도망간 국왕과 신하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명의 도움으로 국난을 이겨냈다고 강조한다. 이제 양반들은 스스로 무장을 갖추고, 노비들을 새로이 정비하고, 확대가족의 형태로서 국가보다는 가족에 의존하여 위기를 해결하려는 전략을 강구한다.  노비들도 자신들의 기록이 말살된 것을 기화로, 그리고 실제로 피난중에 많은 노비들이 도망을 감으로써 노비의 신분을 말살시키고, 스스로 상민으로 행세하게 된다.  국가도 망실된 신분기록, 재정파탄을 보상하기 위해서 노비들의 신분을 상민으로 상승시키면서 돈을 받는 방식으로 재정을 확충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제 양반을 물론이고 노비들의 숫자도 감소하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전쟁중 여인들의 처지, 피난 기록을 둘러싸고, 이제 양반과 백성들은 소설과 기록을 통해 이념적 다툼을 벌인다.  양반들은 명나라를 공경하여 이들이 국가를 구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백성들은 여인들의 활약, 전쟁의 참담함, 명나라군도 조선인을 못살게 굴었다는 점도 기록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백성들은 역사소설로 그들의 경험을 기록한다.  이때부터 소설은 소리내어 읽는 소설이 아니라, 집안에서 혼자 소리내지 않고 읽는 책자로 간주된다.  양반들이 듣지 않는 가운데, 백성들은 언문 소설을 읽는 것이다.  물론 아직 소설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책을 구해주는 상인이나, 책을 빌려주는 상점이 등장한 것만은 사실이다.  책이라는 것이 여전히 비싼 것이기는 하지만, 책은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여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미 17세기의 학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하고, 순서를 정해서 읽고, 책을 읽은 노트로 나중에 분류하여 다시 책을 만들 계획을 세우면서 글을 읽었다.  17세기에 유럽에서 이미 만년필과 연필이 나온 것에 비추어 본다면 조선시대의 필기도구는 여전히 붓을 사용하여야 하므로 불편하기느 하였지만, 그렇다고, 종이에 자신의 견해나, 다른 의견, 참고될 만한 것을 적어놓는 것에 불편해 하지는 않았다.  읽는 책의 종류도 유학의 5서 5경이 아니라, 조선의 역사나 현실에 관한 책, 소설책들도 많이 읽게 된다.  책을 읽는 것 자체를 취미로 삼는 양반들도 생겨남으로써 실질적인 교양계층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조 초기만해도 책은 입신 양명을 위한 것이었고, 자신의 수신을 위한 매우 신성한 행위였었다. 


책이 지배질서의 이대올로기를 내화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읽게 된 것이다.  아마도 조선조 17세기는 근대의식이 싹트는 시기로 이런 점에서 자의식이 싹트는 시기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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