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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2010 활동

발품 팔아 만난 어계 조려 선생의 절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9. 14.


동행이 약속된 날.
새벽 거센 비바람소리에 잠을 설치고 일찍 깼습니다.
6시쯤인가...이걸 어쩐다...휴대폰을 들었다놓았다를 여러번...
결국 8시까지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들 하루 먹거리 챙겨두고 짐 챙기고...
그러는 새 비소리가 잠잠해졌습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일행이 보입니다.
내서에서 한명을 더 태워 지나치게 오붓하게 5명이 9월 12일 동행을 함께합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요?
구름 많이....시원한 바람 가득을 바랬지만 출발부터 햇빛 쨍쨍...입니다.
8월 한달을 쉬었던지라 걱정이 앞섭니다.

걱정과 함께 함안 파수 원촌마을에서 2010년 9월 12일 동행, 파수역에서 춘곡역을 거쳐 진주오가는 길을  나섭니다.


파수 원촌에서 고개를 넘으니 배달치(배닿치) 고개라고 합니다.

배달치고개에서 표지기를 적고 있는 동행인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 알수 없지만...
어김없이 새로운 길은 생기고...



날은 덥고 갈길은 멀고...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사진은 생략됐습니다만...

경주마 휴양시설을 지나고 39사 이전 예정지를 지나고...벌초하는 기계소리가 계속 따라답니다.

여러종의 나무로 이루어진 마을 숲이 있어 그 안쪽이 춘곡역 자리였음을 알려주는 춘곡 들머리 마을숲을 지나고...
춘곡역에서 군북면으로 예전에 장을 보러 다닌 길이라 해서 장고개로 불리는 아래미드미재를 넘고...

시장 가운데 고인돌을 보여 주기 위해 동행인을 이끌고 간 장소에는 고인돌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당산나무 아래 판석만 있더군요.

음...일단 군북면 시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살피던 중 천하통일식당을 찜해서...
이곳에서 맛난 추어탕으로 메뉴 통일하고 배를 채웁니다.
식당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조미료 솜씨가 아닌 그야말로 손맛이라며 스티커 한장씩 받아듭니다.
이곳에서 사라진 고인돌의 행적을 알아냈으니...
땅속에 묻었다는 ...
그럼 안내판이라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남은 코스를 위해 다시 길을 나섭니다.
군북면에서 하림리로 향합니다.
개인적으로 철길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저마다 추억 한가닥씩 풀어놓습니다. ㅎ




세상에 이런곳이 있더군요..고생끝에 즐거움이 있어라...ㅋㅋ
오래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간밤에 내린 비로 물소리와 바람의 느낌이 너~~무 시원한...
목을 축입니다...ㅎㅎ





건너편에서 본 백세청풍 이라는 글귀가 쓰여진 바위의 웅장함에 다시 놀랍니다.
이곳이 어계선생이 울분을 삭이며 세상을 등지고 낚시로 여생을 보낸 곳이라...

청정한 바람의 느낌이 닮았습니다.


하림리 백세청풍 암각



백세청풍은 칠원의 무기연당의 양심대 옆에 새긴 것과 같은 뜻으로 백이산에 깃든 백이와 숙제를 흠모하여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12폭의 병풍을 펼쳐놓은 듯합니다.



고암바위가 있는 하림을 뒤로 하고 진주 반성 방면으로 길을 잡아  원북마을로 향합니다.



미꾸라지 잡는 아저씨에게 슬쩍.. 말도 걸어보고...




저 끝자락인 듯합니다.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원북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원북리 입구




채미정을 두고 어계 선생 고택을 먼저 둘러보기로 합니다. 
길목에서 만난 풍경들입니다.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오래된 은행나무가 이곳이 어계 선생의 고택임을 알려줍니다.



조려(趙旅, 1420년 ~ 1489년)는 조선 세종, 문종, 단종 때의 문신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 은자(漁溪隱者). 1453년에 진사가 되었고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 함안에 돌아가 백이산(伯夷山) 아래에 숨어 살았다고....




늙은 은행나무만이 세월의 애환을 오롯이 품고 있겠지요...








방어산 자락을 향해 뛰려는 개구리 모양을 닮았다해서 개구리 바위라고도 불린다고 표지판에 적혀 있습니다.



다음은 채미정(採微亭)과 청풍대(淸風臺)를 들여다 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다는 오백년 은행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사리를 뜯어 먹고 연명했다는 백이숙제를 연상시키는...
채미정에서도 백세청풍 네글자를 다시 만납니다.



서원과 채미정 사이 길가에 조열선생 신도비와 빗돌, 쌍절각이 있습니다.
이 쌍절각은 정유재란 때 함양군수로 황석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신 조종도를 기린 여표비와 이 소식을 듣고 자결한 전의이씨의 여표비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마지막 발걸음입니다.

서산서원은 1706년(숙종 32)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84년에 복원되었다고...

원북리 서산서원



아는만큼 보인다...가 보지 않은 길을 기다리는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음 동행은 9월 26일(일) 함안읍성에서 진해현(진동) 옛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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