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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사람 생각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소식지 마디미통신 원고/이은진

by 구르다 2004. 6. 25.
마디미 통신 원고

나는 1992년에 마산여고 아래 대동한마음아파트에서 거주한 이후, 무학산의 완월폭포를 거쳐 안개약수터를 자주 이용해 왔다.  낙동강이 오염되어 수돗물을 사실상 먹는 물로 사용치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무학산 계곡의 물만 우리에게 안전한 상태로 충분히 공급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년 들어서, 가뭄이 들어 무학산 계곡에 물소리가 끊기고, 물을 받으려면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만 했다.  물맛도 과거와는 딴판인 것 같다.  앞으로도 물이 줄어들면 줄어들지, 늘어 날 것 같지는 않다.  1994년 7월 독일 빌레펠트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학 대회에 참석하였을 때, 더운 여름인데도 식당에서 물을 주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다.  즉 물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문을 해야 물을 내어 오는 것이었다.  식당에서도, 학교에서도, 이웃집에서도 아무리 더워도 물 한잔 달라고 할 수 없는 세상이 곧 다가오는 것 같다.  생명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 체제이후 사람들의 행동 변화중의 하나는 현금을 이용한 교환체제를 통하여 생활에 물자를 구입하는 것보다는, 특히 생존에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먹을 것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직접 땅에서 가꾸어 수확하거나 아니면 자연에서 채취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무학산은 나무가 무성하여, 지금도 가을에 밤이 떨어지면 밤을 주우려 다니고, 봄에는 나물 따는 재미가 여간 아니었다.  또 산 속을, 나무숲 속을 다니며 청솔가지, 다람쥐, 뱀, 개구리, 도마뱀, 잠자리, 나비, 개미에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움직이는 생물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나로서는 우리의 과거로 회상에 잠기기도 하던 곳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 체제 직후부터 급속히 무덤에 자리를 나뭇가지로 표지를 하거나, 풀과 나무를 베어 내고 농사를 짓는 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산자락에는 숲속을 들어갈 곳이 없다.  대개 누군가가 농사를 짓기 위해 이미 높다란 울타리를 치워놓았고, 땅을 갈아 놓았다.  무학의 자연은 이제 구획 당하고 인간에게 착취당하기 시작하였다.


대구시 중구 삼덕동의 김경민씨 집의 담을 허물었다.  왜냐하면 그의 정원은 자연의 통풍과 햇볕을 요구했고, 이를 위해 그는 담을 허물어 바람과 햇볕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자연만이 아니라 이웃 사람간 마음의 벽까지도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같은 동네의 남창수씨도 벽을 허물어 자연을 끌어들이고, 이웃의 마음까지도 모았다.  그리하여 현재 대구에서는 서구청, 남구청, 12개 동사무소, 경상감영공원, 국채보상기념공원, 경상여상, 경북대병원, 계명대 동산의료원 등의 담을 허물어 버렸다.  지난해 말에 금년에 허물겠다고 계획을 밝힌 곳만도, 개인이 47곳, 동구청 등 행정기관이 37곳, 경북대 치대병원 등 공공기관도 5곳이 되었다.  나는 창원이 찢기고, 나뉘고, 그래서 부족하게 살아가는 곳으로 되어가기 보다는 터놓고, 나누고, 그래야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의 자연과 우리의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곳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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