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실/2010 활동

이야기로 전하는 처자다리와 중다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14.
급수탑을 뒤로하고 삼랑진역에서 택시를 타고 뒷기미나루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삼랑진은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있던 나루로, 밀양강이 이곳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할때 물줄기가 세 갈래진데서 삼랑이라 했다고 합니다.

뒷기미나루(오우진)

뒷기미나루는 삼랑포 뒤에 있는 뫼인 후포산(뒷기미,뒷개뫼) 자락에 있어서 불리게 됐다.



# 삼랑포의 뒷 구릉에는 오우정과 삼강사비가 있었는데
오우정은 점필제의 문인인 민구령이 중종 5년(1910년) 무렵에 옛 삼랑루 자리에 지은 정자로 여흥 민씨 다섯 형제가 하늘에 닿는 효를 다하고 물러나 한 베개 한 밥상으로 침식을 함께하며 학문을 닦으며 산수를 즐기기 위해 지었다.




오우정 안에는 문이 닫혀 들어가 보지 못하고, 문 밖에서 바라본 낙동강 전경입니다.
철도가 왜이리도 많은지...이런 문명의 이기가 없었던 그때는 가히 풍경이 아름다웠으리라 짐작하면서, 문화재 보존과는 상관없는 개발로 달라진 풍경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 삼랑리 윗마(상부)와 아랫마(하부)는 영조 41년(1765년)에 설치한 삼랑창이 있던 곳으로 이곳 비석걸에는 후조창이 융성했던 시절을 일러주는 비석 8기가 남아 있었다.

각종 생활쓰레기로 보존이 제대로 안되고 있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곳을 지나쳐 내려오는 길 또한  공사중이었습니다.




# 오우정과 삼강사비, 그리고 후조창의 비석을 지나쳐 내려온 곳이었는데 ...
콰이강의다리 레스토랑 뒤쪽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 이 길로 낙동강 둑길을 쭉~~걸어서...... 하여튼 저~~~끝까지 계속 걸었습니다.
낙동강가 까치비리길을 찾아서 말이죠^^



강변 둔치에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많이 짓고 있었는데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아 비닐, 철제 등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마음한켠이 무겁기도 하고 외관상 보기 싫더군요.

4대강 사업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목적지로 재촉합니다.
일방통행이 아닌데 차량 두대가 지나가기엔 쫌 빡빡해 보입니다. 마침 건너 오는 차량이 있었고 건너 갈 차량이 다리앞에 있었는데 어떻게 하나 지켜봤더니..역시 마음 넓은 아줌마 운전자가 기다렸다가 지나가네요^^



조금이라도 낙동강변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길이 아닌 곳으로 길을 만들어 다닙니다.


강 건너 맞은편 동네는 김해시 상동마을입니다.




까치비리로 가는 지름길이 있을줄 알고 멋모르고 없는 길 헤쳐가며 열심히 걸었는데...
허무하게 길이 끊겼습니다.

강과 샛강이 만나는 하류지점은 이어지지 않는다 합니다.
샛강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보여 당연히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그 뭔가 있을줄 알았거든요.




다시 돌아옵니다. 이어주는 길을 찾아서...
흰건물 보이시죠?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그옆으로  강을 따라 철길이 있습니다.
까치비리길을 철길이 대신하고 있어 걸어보진 못했지만..
낙동강변 까치비리길이라고 하네요. 




# 처자다리와 중다리


[밀양지명고]에는 이 길에 있었다고 전하는 처자다리와 중다리에 대한 생성설화가 있는데
옛날 작원관 근처에는 조그마한 절이 있어 한 중이 살았는데 근처 마을의 미모의 한 처녀를 연모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해에 두 남녀는 서로 사랑을 걸고 교통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다리 놓기 시합을 벌이기로 했다. 중은 행곡천 다리를 맡았고, 처자는 우곡천 다리를 맡아 작업을 시작했으나 중은 처자의 연약한 노동력을 깔보고 교만을 부리고 있는 사이에 처녀가 먼저 교량을 완성했다. 중은 부끄러운 나머지 자기 몫의 다리를 완공하고는 잘못을 뉘우치고 처녀에게 사과한 후 그 절을 떠나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한다.




이 이야기는 돌다리를 놓을 때 승려가 토목기술자로 참여한 사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위와 같은 설화가 된 것으로 추측합니다.
지금은 그때 놓은다리는 사라졌습니다.




# 다리를 지나 끝까지 가면...까치비리길 시작 지점에 도착하게 되는데...바로 이곳입니다.ㅋㅋ

우리 지역에는 낙동강 하구에 가까운 양산 물금에 물고미잔로 물금잔로혹은 물금잔도 황산잔도라는 길이 있는 이 길은 요산 김정한 선생의 수라도에도 나오는 험한 길입니다. 거기서 조금더 북쪽으로 오르면 밀양 검세리와 양산 하주막 사이에 까치비리라 불리는 작원잔도가 있습니다. 이 길은 워낙 험하여 옛적에 고을 원님이 강물에 떨어져 죽었대서 원추암이라 불리는 바위도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갈수 있는 길이 아니기에...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코스로 이동합니다.




다음 만날 풍경은 철길 건너에 있는 작원관지로 갑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