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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사람 생각

책을 읽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23.

노무현 전임 대통령이 유서에 쓴 내용이다.

죽으려고 작정하고 쓴 것이므로, 죽음에 대한 제재를 선택한 것은 추측이 가능하지만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쓴 것은 상당한 사유의 과정을 거친 후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대개는 주위에 대한 원망,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구구 절절히 쓰거나, 아니면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감회를 쓰는 것으로 마감할 터인데, 노무현 전임 대통령은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자신의 죽음의 이유를 밝혔다.

직접적으로 거론하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도 곧 죽을 것이라는 철학적, 생물학적 내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일수도 있고, 아니면 보다 직접적인 원망의 감정을 표출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사회학에서 말하듯이, 인간에게 생물학적 죽음과 사회적 죽음은 하나라고 설명하듯 그것을 다시한번 깨달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기본적인 인간의 속성도 잃어버린,
즉 인간이 아닌 생물학적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많기에 이런 표현에 나는 감동을 받는다.

거짓과 배신이 마치 의리를 위해서 거짓을 하고, 자신의 생존과 권좌를 위해 배신을 일삼는 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교훈이 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무척 도덕적인 표현이 마음에 닿는다.


다른 한편 왜 책을 읽을 수 없다라고 표현하였을까?
책을 읽지 못하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대한 민국 국민 대다수가 일년에 책을 거의 읽지 않고도 잘 살고 있고, 아니 책을 읽지 않는자들이 오히려 출세가 빠른데, 책을 읽지 않게 된 것을 유서에 쓸 정도의 죽음의 이유가 되는가?

나는 노무현 유서의 감동의 또 하나가 책을 읽지 못한다는 표현에서 발견한다. 
물론 책을 읽지 못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근의 자신의 심적 상태를 짐작케 하는 말로 책을 읽을 수 없다라는 표현을 쓴 것에 주목한다.

책을 읽는 것은 심적인 고요함과 평정함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책은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평정함과 심적인 호기심과 모험심을 삶의 의의로 생각하는 사람만이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늘상 정치인들이 책을 많이 읽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존경하는 사람은 대개 이순신, 김구 등 천편일률적인 애국적인 위인들을 드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본다. 
존경 대상 위인들에게 폐가 되는 행위를 너무 자주하는 것을 보면서, 노무현 전임 대통령이 최근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문득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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