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경남사회복지협의회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다. 지역의 NGO를 탐방하는 코너에 연구소의 소개글을 써 달라고 한다.
다른 일정에 쫒겨 꼼꼼하게 원고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며칠전 경남복지 2009년 가호가 배달되어 왔다.
연구소의 마을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주관적으로 정리한 것인데, 이것도 기록이다 싶어 옮겨 본다.
마을도서관이 없다고 삶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가 사는 마을에는 도서관이 있는 곳 보다, 없는 곳이 훨씬 많다. 그렇다고 도서관이 없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활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걸어서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 마을에 살았던 사람이 도서관이 없는 마을로 이사를 가면 생활에 상당한 불편함을 느낀다.
마을도서관(작은도서관)은 바로 이런 것이다. 없어도 그뿐이지만 있음으로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그런 곳이다.
2009년 현재 TV, 지방정부, 중앙정부에서도 책 읽는 것이 중요하다. 접근성이 좋은 도서관을 마을 마다 만들어야 한다며 선진 외국의 사례를 들고 오고, 빌게이츠를 들먹인다. 또 생활 속 도서관을 이야기하면서 기적의도서관을 빼 놓지 않는다. 마치 기적의 도서관이 작은도서관의 대안처럼 홍보 한다.
2007년 봉곡마을도서관의 배려와 감사의 석류길 축제
기적의도서관은 어느 날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기적의 산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기적의 도서관이 도서관운동에서 가지는 순기능에 대해서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강력한 매스미디어를 통한 운동이었기에 국민들의 책과 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고, 기적의 도서관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경쟁도 심했다. 분명 한국의 작은도서관운동에서 큰 획을 그은 일대 사건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기적의도서관에 이어 작은도서관을 만드는 사업으로 ‘고맙습니다. 작은도서관’까지 이어 오고 있으니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작은도서관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섭섭하고 아쉬운 점도 있다. 분명한 것은 기적의도서관은 작은도서관의 한 유형에 불과한 것이고, 작은도서관운동이나 정책이기 보다 작은도서관 만들기 이벤트이다. 그것에 대한 과대포장으로 민간에서 열정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과소평가되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섭섭한 것이다.
창원에는 기적의도서관이 없다. 그러나 인구50만의 도시에 30여개의 마을도서관이 있다. 인구대비 도서관 수나 장서 수를 따지면 세계최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일구어 놓은 일이고, 화려하지도 않으며. 유명한 단체에서 추진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마을도서관은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지 폼 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마을도서관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있으면 그 가치를 발현하는 그런 곳이다.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그런 시설이다.
그런측면에서 작은도서관을 만들면서 요란을 뜨는 것은 어쩌면 제사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요란을 떨며 만들고 정작운영에는 소홀하여 나중에는 필요도 없는 시설이 되고 그냥 없어지는 경우도 허다하게 있기 때문이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는 1994년 10월4일 지금의 창원도서관에서 “경남도서관및 정보문화발전연구소‘라는 명칭으로 창립 하였다. 단체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역에서 민간도서관운동을 하는 사람, 교수, 의사, 변호사, 한의사, 기자, 기업인, 기계연구소 연구원, 공무원 등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독서운동과 지역사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였다. 1993년 책의해 활동 후속모임 성격도 있었으나, 창립선언문(1994.10.04)에 제시했듯이 ’정보와 지식의 자치‘,’정보와 지식의 자립‘을 선언하며 ’참여를 통한 정보와 지식의 소통‘을 과제로 하였고 이러한 과제의 실현 도구로 마을도서관을 설립하여 마을의 문화중심지로서 정보와 지식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주고받는 터전으로 발전시키자고 하였다.
2009년 ‘참여’와 ‘소통’은 기업은 물론 정부와 시민사회에서도 중요한 화두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15전 그것은 앞서도 한참 앞선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실현의 공간을 지역을 이루는 가장 기초단위인 마을에 두었다.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도서관을 말했다. 그랬기에 단체를 창립하면서도 그 어디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1995년 2월 창원시의 봉곡, 봉림, 사림이주민복지회관을 무상으로 대여하여 마을학교를 운영하였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 마을을 공부하고 지역을 공부하고, 글쓰기를 하였다. 또 주부들을 모아 종이접기를 하고, 부모교육을 하였다. 그 중심에는 창원대 정영애 교수가 있었다.
지금은 평생학습도시 정부정책이 있고, 전국민이 평생학습을 하고 있지만 15년 전 이런 활동역시 생소한 일이었으며, 특히 마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건이었다.
창원 최초 마을도서관은 사파동 동성아파트마을도서관이다. 1995년 건설회사와 입주민 사이에 하자보수 관계로 분쟁이 일어났다. 그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파트마을도서관이다. 기존의 도서관은 폐가식으로 열람실이 독서실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1995년 7월 연구소가 참여해서 만든 창원 최초의 마을도서관은 개가식도서관이다. 연구소가 마을도서관을 만들며 국내 사례가 없어 미국의 커뮤니티센터, 일본의 공민관 등 외국사례를 연구하고 그곳 관계자와 관계 맺으매 모델개발 하였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초기모델을 기본으로 발전시켜 유지하고 있으며 작은도서관 일반모델이 되었다.
1995년 8월 창원에서 민관협력으로 공립 봉림마을도서관을 개관했다. 설립에 대한 재원은 창원시가, 운영은 민간이 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도서관은 그 태생이 공공성을 갖는다. 개인이나 단체가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는 하나의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필요한 곳에 도서관을 만들어 주민들의 터전으로 만드는 것을 운동으로 삼았다. 이에 그 실현 방식을 민관협력방식으로 하였다. 지역을 조사하여 정책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을 지방선거 단체장 후보에게 공약으로 제안하고, 당선 후에 그 공약을 실현하게 하였다. 그런 방식은 적중하였고 오늘 창원시가 30여개의 도서관을 만들어 조례라는 제도로 도서관운영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조례라는 제도를 만들기 까지 첫 도서관을 개관하고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0년 동안 충분하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운영을 안정화 했으며, 그것은 제도로 정착을 시켰다. 그 과정에서는 민관의 협력과 갈등이 공존했으며 끊임없이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오는 과정이었다.
창원에서 이루어진 오랜 시간 민관이 함께 만든 마을도서관은 유행을 타고 행정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과 차별되며, 행정의 도움 없이 민간에서 홀로 힘들게 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이런 창원의 사례는 중앙정부에서 작은도서관 모델을 만들고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하였다.
작은도서관은 “걸어서 10분 내외의 접근성이 용이한 생활친화적 소규모 독서문화곤간으로 독서 및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주민들의 평생학습과 지역공동체가 형성되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런 정의가 일반화 된 것도 2005년 문광부에서 작은도서관 정책을 수립하면서 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작은도서관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였다.
창원의 마을도서관운영 경험과 내용이 녹아있는 정의이고, 연구소의 창립선언문에 밝혀놓은 것에 기초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작은도서관은 운동의 개념이지 시설의 개념이 아니다. 작은도서관의 유형에는 기적의도서관을 포함해서, 창원의 마을도서관, 학교도서관, 교회문고 등 다양한 것이 포함된다. 이런 유형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작은도서관은 지역사회 공동체형성, 지역문화의 발전, 지식의 평등화를 통한 계층양극화의 완화 등 공동체 이념을 담고 있다.
창원의 마을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은 기본이며, 공부방, 부모교육, 취미교실, 문해교육, 체험활동 등 평생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마을축제, 음악회 등 공동체 활동, 다양한 영역의 소모임을 통해 봉사와 더불어 참여자의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 또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활동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도서관에 담기는 내용이 꼬집어 정해진 것이 없다. 도서관 주변의 마을주민의 구체적 처지와 조건에 기반한 주민요구를 도서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곳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지금 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더 필요한 시설이라는 것이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는 창원을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는 곳으로 만드는데 10여 년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창원에서의 경험을 전국으로 나누기 위해 중앙정부에서 작은도서관 정책을 만드는 것에 힘을 보태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지방정부에서 작은도서관을 주민생활과 직결된 좋은 정책으로 인식하고 요구하지 않아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작은도서관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는 운동이거나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도서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작은도서관의 효용을 수치로 정리된 것은 없으며 그것을 수치로 환산하기도 어려운 아주 장기적인 투자라는 것이다. 작은도서관 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 그리고 행정기관에서도 이런 것을 분명히하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그 열매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라면 부모가 일 나가고 방치된 아이들이 도서관에 와서 책도 보고, 공부도 하며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축제를 통해 이웃을 사귀었다. 우리 시민이 몇 권의 책을 읽어 똑똑해 졌다는 정도이지, 그런 활동을 통해 공동체가 얼마나 성숙했고 얼마큼 범죄가 줄었고, 지역사회가 이만큼 생산력을 높였다고 수치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마을마다 도서관이 생겨 이웃을 만나고, 책을 보고, 평생학습을 하고, 도서관에서 음악회를 하고, 마을축제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지지 않겠는가? 마을도서관은 없어도 별일 없지만, 있음으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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