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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사람 생각

미수에 그친 '다수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7. 25.


차정인 이사(부산대 교수)

방송법은 국민 대다수의 의사에 반하므로 국민주권의 본질적 관점에서 무효다.
국민들은 방송법이 집권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강행되는 것임을 이론으로, 느낌으로 안다. 짐짓 문민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그 속에는 군사쿠데타에 비견할 만한 주권자 무시와 기만, 비판 봉쇄, 권력 야욕이 있음을 안다. 의회쿠데타라는 말은 이 경우에 적절하다. 지금은 대의민주주의가 실패하고 본질적으로 무효인 것이 유효의 외관을 띠고 있는 비정상적 상태다.

의회에 다수결 원칙이 있다는 건 국민들도 안다. 그러나 법률안에 대하여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이라면 국민주권의 헌법 원리 앞에서 다수결은 초라한 논리다. 그들의 논리가 초라한 만큼 국회법 규정에 더욱 의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초라하게도 다수결을 관철하지도 못했다. 옳지 못한 일을, 그것도 백주에 주인들이 보는 앞에서 감행하다가 심장이 떨리고 손발이 맞지 않아 미수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대의민주주의가 실패하고 본질적으로 무효인 것이 유효의 외관을 띠고 있는 비정상적 상태다.



필자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미디어법 의결의 전 과정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의장석과 발언대, 의원석, 방청석, 표결집계 전광판의 상황과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의사진행이 생중계되었다. 이번 대한민국 국회의 방송법 표결(재투표 표결)은 무효로 보인다.


이번 표결은 국회법이 정한 원칙적 표결 방법인 ‘전자투표에 의한 기록표결’ 방식을 택하였다. 이것은 기명, 호명, 무기명투표, 기립표결 방식을 택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전자투표는 국회의원이 본인의 지정된 좌석에서 본인의 손으로 찬성, 반대, 기권을 선택하여 투표 행위를 해야 한다. 방송법 재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의장석 주변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점거하고 있었거나 회의장 바깥에 있었던 수많은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전광판에 재석의원으로 표기되어 나타난 것은 대리투표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여러 대의 방송카메라, 방청객 카메라, 폐쇄회로 영상 자료에 직접적인 증거가 있을 것이다. 각자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표결 행위는 누구도 대리할 수 없다. 대리투표는 전형적인 부정투표이며 범죄행위다. 그러므로 방송법에 관한 재투표 집계는 무효 투표를 포함한 것으로서 그 전체가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


치명적 결함은 또 있다. 투표 종료 선언 후 부결된 법안을 ‘재투표’한 것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부결된 것이 아니고 의사정족수가 안 되어 불성립되었으므로 재투표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정족수에는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가 있다.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은 모두 의결(가결)정족수다. 이때 출석이란 재석하여 표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투표 종료와 개표 결과 재석의원이 과반수에 미달하면 안건은 가결되지 못하고 그대로 부결되는 것이다.


만약 표결 선언 후 즉시 의결정족수 미달이 확인되어 표결 불성립을 선언하였다면 몰라도 표결 선언, 투표, 투표 종료 선언, 개표를 모두 마친 표결을 불성립이라고 볼 여지가 있는가? 또 의장이 부결 선언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부결 안 된 것이 아니다.
표결이 종료하면 부결은 표결 결과에 따라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의장의 선언을 기다려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또 국회의 자율권을 거론하면서 외부에서 시비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국회의 자율권은 법 규정이 없는 경우에 거론할 말이다.


그러므로 방송법 재투표는 부결로 끝난 법안을 두고 의장이 끝나지 않았다고 임의로 해석하고 임의로 진행한 표결로서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어긋나 무효로 보인다.


차정인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법

(이글은 7. 25. 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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