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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연구소10년(`94-`04)

21세기 시민사회:분화와 재구성의 분기점에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4. 4. 25.
21세기 시민사회:분화와 재구성의 분기점에서
차 성 수(동아대학교사회학과)

사회운동에 미래가 있는가라고 우리가 물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진지하게 이렇게 물어보아야한다.
'사회운동은 어떤 미래를 가질 것인가?' 우리는 결코 북극성에 이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북쪽으로 여행을 계속해야한다면 북극성쪽으로 눈을 주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I. 우리의 話頭는 무엇인가?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思考와 人物을 원한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내용과 이를 이끌고 나아갈 주체는 누구인가? 이는 역사상 모든 當代의 사람들 특히 기존 질서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항상 제기되어 왔던 질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이 질문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가능성과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한다. 이에 우리는 이제 그 질문의 답을 구하자 한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은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추동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희망의 근거를 창출하는 과정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조금이라도 다가서기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구호의 존립을 위협하는 생태파괴와 소수 독점과 독선을 부추키는 신자유주의가 이 땅에서 뿌리 내린지 오래이며, 한국사회의 고유 모순과 어울려 악순환을 이루고 있단 심각성에 기인한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가 희망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부질없는 행동으로 간주되는 허망한 현실이 일반화되었다.

이토록 불순한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된다면 아니 허용된다면 우리는 반전의 기회를 영원히 잡지 못할 수도 있다. 이에 우린 선한 자들의 손을 그리고 이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단 믿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어깨를 부여잡고 새로이 길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의 발길은 미래를 보다 나은 세상으로 꾸미고자 하는 지구상의 모든 동반자의 의지와 함께할 것이며,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존중하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우리들이 그러한 역할을 자신과 역사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담당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사회운동이란 개인이나 집단들을 그들의 삶의 기회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속과 억압들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을 의미한다. 모든 운동은 정당하지 못한 지배를 극복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갖고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이 변하면 구속과 억압의 양태나 강도도 달라지게 되고 이에 따라 운동의 내용과 형식도 변화하게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운동이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관성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 운동은 운동으로서의 존재근거를 상실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운동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많이 변화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내적 발전과정은 점진적 성장과 비약적 팽창, 점진적 쇠퇴와 급작스러운 몰락등 모든 유기체처럼 영고성쇠를 겪게된다. 시민운동 또한 여기서 예외적이지 않다. 문제는 각각의 단계마다 사회운동이 대응하는 활동내용과 방식은 달라져야하고, 이를 알기위해서는 사회운동이 지금 어느 지점에 와있는지를 잘 파악해야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공황처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비약적 팽창 뒤에는 항상 리풀렛조라는 썰물현상이 나타나고 운동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는데 운동이 점진적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팽창의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운동의 사회적 위상을 분명히 세워야한다. 보다 근원적인 시점에서 고민해야한다면 시민운동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자기점검이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 전망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민운동이 방어적이고 보완적인 역할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를 이끄는 중심적 주체로서 최소한 정부나 자본과 동등한 능력으로 자신을 키워갈 것인가? 혹은 어떤 단계에서 전자에서 후자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등등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진행되어야할 시점.


II. 성공의 위기 - 시민사회의 재구조화   1987년 6월 민주항쟁이후 한국사회는 민주화 이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개선과 악화를 반복하는 아시아지역 다른 국가에 비해, 87년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한국의 민주화과정은 매우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국가와 강력한 시민사회간 충돌과 그에 따른 타협에 의한 점진적 민주화를 겪고있는 한국사회의 경험은 비슷한 정치적 문화적 전통을 갖고있는 아시아지역 국가에게 가능한 민주화경로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또한 한국의 민주화가 체제의 위기가 아니라 성공의 위기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딜레마에서 헤매는 다른 국가들에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화의 국제적 영향력에 관한 기존 연구(Schmitter, 1997;Norris,1999)들을 굳이 반복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의 민주화과정이 아시아지역 국가의 민주화에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과정은 아시아지역의 민주화로부터 영향을 받게된다. 아시아지역의 민주화가 정체되어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심화 역시 장애에 봉착할 수 있기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한국사회 민주화의 공고화과정의 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Alagappa는 이러한 장애요인으로 행정부의 권력집중, 금권정치와 부패, 정당제도화의 미흡, 남북한간의 분단체제등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장애들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시아지역의 민주화에 전염적 전파효과를 미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Alagappa, 1996). 물론 이러한 지적이 일면 타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필자는 한국사회 민주화과정에서 더 근본적인 장애요인은 시민사회의 균열에 있다고 본다.  사실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조직화된 시민사회'의 결집된 힘에 바탕하여 민주주의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90년대를  거치면서 시민사회의 균열이 진행되고 있고, 이러한 균열이 민주화의 공고화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적 시민사회의 등장으로 사회가 통합되기보단 사회해체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지역주의적 균열, 냉전이데올로기적 균열, 사회집단들간의 배타성등이 정치사회가 구사하는 전략들과 맞물리면서 시민사회의 균열은 더욱 촉진되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약화와 균열의 근저에는 개인주의화란 요인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한 새로운 정체성의 정치(politics of identity)가 작동하고 있다(Rajchman,1995)   개인주의화는 크게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세 측면에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선거행위 자체가 이미 개인화된 정치행동인데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무력감등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민을 脫政治化시키는 것이다. 시장과 소비의 논리는 私事化된 生活世界 혹은 市民的 私事主義(civil privatism)를 형성하며, 이것은 동시에 적절한 개인적 동기화와 가치-성취이데올로기, 경쟁과 효율성의 가치-를 제공하는데 가장 적합한 메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휴대폰의 등장, 원룸등 주거공간의 변화,  인터넷등 사이버문화의 발달등은 개인주의화의 사회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성장과 민주화라는 이분법적 정체성을 벗어난 이후 시민사회를 압도하는 흐름은 개인화와 이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재구조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보다 넓게는 후발자본주의국가의 민주화이행에 대한 유보적 시각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바로 이 분화되었지만 더욱 조직화된 시민사회의 갈등을 조율하는 메카니즘을 어떻게 확보하는 가에 달려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개인주의화과정은 크게 두가지 상이한 단계의 동시적 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화, 민주와와 함께 진행되는 개인주의화가 한 축이라면 세계화 정보화와 함께 진행되는 개인주의화가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 개인주의화는 한국사회를 급격히 해체시키는 측면이 있다.    먼저 개인주의화는 근대화의 고유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Beck, 1997). 전근대적 공동체를 해체시키면서 종교개혁과 시장화과정을 통해 개인주의화는 개인의식의 차원에서는 물론  객관적인 생활상황, 다시 말하면 제도와 연결된 생활양식에서도 개인주의화를 보여주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한국의 근대화 역시 민주주의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체계와 제도의 근대적 분화를 거치면서 개인주의화를 지속적으로 확대시켜왔다. 도시화와 핵가족화, 전통적인 가치와 규범의 쇠퇴, 시장메카니즘에 기초한 원자화된 노동력, 제도의 합리화는 근대화과정이자 동시에 개인주의화과정이었다.  


1. 정치와 개인주의화
이러한 개인주의화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까지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민주와 독재의 이분법적 대립구도에서 사회적 갈등의 의제들이 '근대화담론'과 '민주화 담론'으로 단순화되고, 개인주의 또는 개인주의적 삶의 양식들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월 항쟁과 이후의 민주화는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무너뜨리면서 개인주의화를 촉진시킨 측면이 있다.
시민들의 국가권력에 대한 두려움은 약화되고 권리의식은 높아진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약자는 더욱 국가에 의존하려고 하는데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면서 요구의 양은 증가하고 속도는 빨라지는데 요구의 충족범위는 제한되고 속도는 더욱 느려진다. 즉 요구의 급속성과 충족의 저속성이라는 딜레마가 나타나는 것이다(보비오, ). 따라서 민주화가 될수록 시민들은 정치와 국가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고 이에 따라 국가정당성은 약화된다. 지난 10여년동안 투표율의 급속한 저하는 특정정당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과 거부를 총체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민들은 국가라는 공적기구보다는 국가외적 자기방어구조를 만들어 이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나간다. 곧잘 극단화되는 크고 작은 이익투쟁이나 소위 '님비현상'을 보면 시민들 상호간의 신뢰와 연대감이 강화되고있다는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시민사회의 약화와 균열은 일견 정치적 지배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국가권력이 시민사회에 대한 억압적 봉쇄적 성격을 약화시키면서 기존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기위해 선택한 지배방식은 크게 세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시민사회를 집단적으로 분열시키는 것이다. 전근대적 연고주의에 기초한 영남/호남의 분열-3당합당으로 상징되는-, 노동운동에 대한 재억압과 시민운동의 묵인을 통한 노동운동/시민운동의 분열, 중산층/노동자의 분열이라는 중층적 분열구도가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분열과정에서 시민운동은 국가권력과 직접적인 적대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합법적인 활동에 스스로를 제한함으로써 노동운동보다도 폭넓은 정치적 기회와 자원에 접근할 수 있었던것도 사실이다.
둘째는 시민사회를 原子化시키는 것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무력감등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민을 脫政治化-리플렛조-시키는 것이다. 과잉정치화의 폐해에 대한 집중적 공세를 통해 이제 시민들에게 '정치가 모든 것이었다가 한순간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시민사회의 원자화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시장논리의 전면화와 언론의 협조가 절실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의 전면적 시행을 들 수 있다. 물론 지방자치가 시민사회의 성과물이자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 분열과 계급적 분열이 진행되면서 지역시민사회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권력의 분산보다는 책임의 분산에 더욱 초점을 맞춘 지방자치는 과잉된 중앙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집중공세를 지방화시키고, 지방간 경쟁과 갈등을 촉발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균열을 심화시켜왔다고 볼 수 있다.  


2. 경제와 개인주의화
 국가주도적 경제성장과정에서 자본가로 비롯되는 경제권력은 국가의 지원, 감독, 후견을 받으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을 넘으면서 경제권력은 자신의 모태인 국가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독점자본으로서 자립적 축적이 가능한 상태에서 국가지원은 간섭이고, 정부감독은 억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결정의 정치화'라는 종속상태에서 벗어나 자율적 논리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갖추어진 80년대 중반 이후에도 국가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노동운동을 배제시키는데 있어서 국가의 공권력과 이데올로기적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했기때문이었다. 그렇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의 광범한 설립과 '노동의 정치'가 강화되면서 자본의 헤게모니가 위협받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차적 정당성과 공공선을 주장하는 국가로부터 과거와 같은 일방적 지원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의 행사방식이 재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본이 시급하게 대처해야했던 것은 시민운동이 아니라 노동운동이었다.

시민운동이 주장하는 경제정의와 합리적 시장경제가 자신들의 입지를 흔들고 있기는 하지만, 합리적 시장경제와 자율성은 경제의 탈정치화, 시장중심논리를 주장하는 자본의 입장에 해로울 것이 없었고, 경제정의야 어차피 국가라는 우회로를 거쳐서 오는 것이지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危害-불매운동등과 같은-를 줄만큼 강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모두 집합적 행동이고, 집합적행위는 그것만으로도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소수의 자본에게 잠재적 위험요소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자본 또는 경제권력은 급박한 위험요소로서 노동운동과 잠재적 위험요소로서 시민운동을, 궁극적으로는 권력에 대한 도전의 기반인 시민사회를 은밀하게 해체-일방적 지배가 아니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자본의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은 자본이 어차피 공공선을 주장할 수 없는 이상 다른 메카니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바로 '시장과 소비의 논리'이다.  시장과 소비의 논리는 私事化된 生活世界 혹은 市民的 私事主義(civil privatism)를 형성하며, 이것은 동시에 적절한 개인적 동기화와 가치-성취이데올로기, 경쟁과 효율성의 가치-를 제공하는데 가장 적합한 메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6월 항쟁이후 몇 년동안 공동체로서의 국가에 대한 도덕성이 약화되고 시민사회가 도덕적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채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에 의해 흩어지는 순간들을 자본은 놓치지 않았다. 즉 전통과 권위에 기초한 문맥한정적 도덕성이 무너지고 합리적으로 수정가능한 의사소통적 도덕성을 구축하기에는 시민운동이 취약하고 공공영역의 중심축이 되어야할  언론은 재벌언론과 언론재벌의 상업성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전경련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은 '시장'이라는 도덕성과 정당성을 전면화시켰다. 물론 이것도 국가와 언론이라는 외부기제를 활용해서이기는 하지만.  고비용저효율구조를 혁파한다는 新經濟論이나 개방화, 세계화담론은 시장이야말로 생존의 근거이자 우리사회의 도덕율임을 강변하게만드는 핵심담론이었다.

그리고 '시장'에 담겨있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는 최고의 가치로서 경제영역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모든 영역에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초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이나 대학경쟁력강화를 위한 대학간 경쟁논리등은 교육을 시장논리에 휘둘리게 만들었고, '마누라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이건희식 경쟁력강화논리는 경쟁과 효율의 규범에서 벗어날 수 있는 聖域이 없음을 선언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였다. 경쟁과 효율의 논리는 노동자에게 가장 집중적으로 요구되면서 '명퇴'나 '연봉제'등 새로운 제도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경쟁과 효율의 논리는 노동조합이라는 집합적 주체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개인개인에게 강요되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노동자들간의 경쟁논리로 귀결되어 노동자를 원자화시키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업별노조라는 노동운동의 조직틀은 기업간경쟁구조 속에서 企業的 私事主義의 온상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소비의 차원에서 개인주의화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사회가 본격적인 대중소비사회로 진입한 것을 90년대 초라고 볼 수 있으며, 바로 이시기에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결합이 소비욕구의 폭발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가용소유가 중산층을 넘어 노동자계급에게까지 확산되고, 가계지출에서 교육·외식·레저오락비용의 비중이 급속히 높아진 것도 이 시기이다(정건화, 1994). 이러한 소비생활 양식의 정착은 생활의 개인화를 촉진함과 동시에 개인적 생활에 대한 소비권력의 작동을 강화한다고 볼 수 있다.  대중소비사회로의 진입, 소비생활양식의 일반화는 家族的 私事主義를 촉진시켰으며 시민사회를 가족중심의 원자화로 만드는데 적지않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쟁과 효율에 기초한 시장논리와 대중소비사회는 노동자와 중산층의 집단화를 방지하는데 적지않은 기여를 했으며 동시에 공동체적 규범을 개인주의적 생활원리로 전환시키거나  공동체를 가족적 연고틀 내로 제한하는 중심적 기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3.  시민사회의 재구조화-정체성의 정치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는 억압되고 종속되기는 했지만 민주화라는 하나의 구심력을 갖고있었다. 그러나 6월항쟁이후 시민사회의 공간이 열리기는 했지만 시민사회의 구심력은 상실되었다.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서라도 확대된 정치참여가 더 큰 사회적 자각을 '저절로' 가져오리라는 기대는 허물어졌으며, 시민사회가 성숙되고 강화되었다기보다는 점진적 해체의 과정을 거쳤다. 즉 시민사회의 이상적 모델은 구심적(centripetal)사회지만 지난 10년 우리의 현실은 원심적 사회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1보후퇴했던 국가권력과 자본이 한편으로는 공공선과 절차적 정당성을 무기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과 효율에 기초한 시장논리와 소비논리로 무장한 채 열려진 시민사회로 2보 전진해오는 사이에, 시민사회는 개인으로, 가족으로, (지역적, 직업적, 계층적)이익집단으로 분열되고 갈등하면서 위축되어왔다.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넘어오면서 사회운동-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시차는 있지만-은 사회체계의 재구조화의 속도와 내용을 주도하지못함으로 '개혁의 정치'는 커녕 '영향력의 정치'를 펼치기도 급급한 상황이 됐다.          조직화된 시민사회의 약화와 급속하게 진행되는 개인주의화는 시민사회를 완전히 해체시키기 보다는 새로운 정체성(identity)을 추구하는 조직의 다양화로 재편되기 시작했다(Aronowitz, 1992).

이것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첫째는 이익집단의 양적 팽창과 활동의 강화로 나타나게 되며(interest identity) 둘째로 종교나 유사종교적 집단(단학이나 동양적 자기수련과정)의 활성화와 향후회, 동창회,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ILOVESCHOOL의 폭발적 호응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emotional identity) 물론 이러한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국가라는 공적기구에 대한 신뢰의 약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개인화의 급격한 진행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시민운동도 운동의 정체성이나 활동공간의 측면에서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체성의 측면에서는 저항적, 비판적 기능을 갖는 시민운동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고 이것을 실현시키려는 시민운동이 나타나고 있고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resistance identity vs project identity)(Castelles, 1997) 활동공간의 측면에서는 국가나 정부, 자본 일반을 상대로 활동하는 조직과 생활지역단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직으로의 분화가 진행되고 있다(national vs local). 이러한 이중적 분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시민운동의 자기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 또한 활발해지고 있다.                             

<표 1>시민사회 조직의 다원화       

시민사회의 분화와 함께 경계의 해체 또는 유동성이 나타나고 있다. 
시민사회는 대체로 비국가영역(non-state sphere), 비시장영역(non-market sphere)의 성격을 독특하게 개념화한 것이며, 종종 국가 및 시장과 대립하거나 혹은 국가를 견제하는 역할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국가/시민사회, 정부/NGO(시민운동), 시민운동/기업을 가르는 경직된 경계선은 '제2건국위원회', '주민자치센터', '내사랑부산시민운동협의회'등 정부활동 공간의 확대로 흐려지고 있다. 나아가 수백억원이 넘는 정부의 시민운동지원 및 협력사업은 지원을 받아들이는 것의 정당성 여부와 별개로  경계선의 약화로 귀결되고 있는 듯 하다. 이와 함께 기업의 사회적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회복지 및 자원봉사에의 적극적 참여(삼성이나 중앙일보가 대표적일 것)는 이윤추구가 최종적 귀결점이라는 근원적 비판과 상관없이 그동안 자율성의 고유한 활동주체임을 자임하던 NGO나 시민단체에게는 가볍지않은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미국에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지방정부가 사회복지관련 시민프로그램(정부지원으로 활동하는 시민사업)의 효율성을 문제삼으면서 복지프로그램을 아웃소싱하고 여기에 민간기업이 참여한다는 것은 결국 특정한 주체의 고유영역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또한 시민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집단이 정당성과 설득력을 얻기위해 사회봉사활동의 비중을 증가시키고있고 그 결과 활동의 외양에서만 본다면 시민단체와 이익집단의 차이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 또한 시민사회 영역 안에서 진행되는 경계의 유동화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내외부에서 진행되는 변화가 경계를 유동화시킬 뿐 아니라 총선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의 활동방식도 경계를 약화시키거나 유동화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시민사회의 분화 또한 이러한 경계의 해체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III. 어떤 시민사회를 지향할 것인가? 

시민운동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반성이 진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성과에 안주함으로써 열광적시기와 단기적 승부 이후를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즉 시민사회적 패러다임의 부재는 시민운동의 조직과 활동방식을 혼란시킬 것이며, 이것은 시민사회내 다양한 단체의 급속한 양적 성장과 함께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시대의 산물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와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필요한 변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기조 구조를 극복해야만 한다. 근본적인 무지, 모든 위기에 대한 과도한 공포, 최적은 아니지만 잘 알려진 친숙한 해결책을 선호하여 변화를 싫어하는 수구적인 지향은 인류의 긍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우리는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시각에서 출발하여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새로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여야 한다......모든 사회구성원과 집단은 그들의 책임이 어디에 있으며, 또 어떻게 그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가를 인식해야만 한다" 다른 시각에서 출발해서 책임을 완수하는 것, 이것이 시민운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ink-Tank로서의 시민사회

1) 유토피아적 현실주의를 수용해야한다. 유토피아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현실내부로터 찾아내 발아, 성장시켜야하는 것인데 이것은 중장기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시민사회발전의 총체적 모델(거대담론)을 만들고 이를 미시담론으로 연결하면서 활동조직들을 유기적네트워크로 조직하면서 지원하는 집합적 노력이 필요하다.

2) 이러한 노력은 곧 하나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미력이나마 보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시장의 헤게모니에 대해 Counter-Hegemony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상징과 담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예컨대 IMF관리체제로 들어가게되었을 때 시민사회는 무엇을 했는지,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무엇을 어떻게 이끌어가야하는지등을 고민해보자. 즉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문제는 국가의 몫이고 일상생활과 관련된 부분은 시민운동의 몫인지, 전자에 대해서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이 견제와 감시외에 다른 방식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자기반성과 고민이 요구된다.
  
3) 시나리오적 사고와 전략이 필요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가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까다로와지고 불확실성의 사회구조로 변모해간다. 불확실성이 큰 사회에서 현재 진행중인 변화의 크기나 심도를 단선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때문에 시나리오적 사고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문제는 낙관주의냐 비관주의냐의 선택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위험을, 문제를 정직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조율자로서의 시민사회
1)시민사회의 분화와 재구성은 갈등과 대립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갈등의 조정과 조율을 통한 역동성의 재구축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갈등조절메카니즘으로서 국가의 역할을 점차 제한될 수 밖에 없으며, 시민사회의 역할은 증대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시장에서의 이익배분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에서 국가보다는 시민사회가 정당성을 갖고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2)정치와 관련해서는 단기적으로 시민사회의 정치사회에 대한 수동적 개입(총선연대와 같은 활동)에서 적극적 개입으로 갈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물론 이 문제는 2004총선 진출이라는 문제로 표현될 수 있는데 개혁세력과의 연대수준, 개입의 범위와 방법등 전술적인 부분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민운동에 대한 영향등을 고려하여 결정해야할 문제이다.

3) 시민운동의 무원칙적, 형식적 연대에서 원칙적, 내적 연대로의 전환의 문제: 시민운동 내부의 정체성혼란을 극복하고 시민운동의 실무역량을 증대시키기 위한 연대의 틀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운동간의 경쟁을 통한 개별단체의 발전과 연대를 통해 시민사회 역량을 함께 키워나가려는 연대만이 시민운동의 살길이다. 이와 함께 시민운동의 다양한 분화(이슈에서 조직형태, 활동방식까지)로부터 서로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행정과 화폐의 권력을 넘어서는 시민사업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시키기

1> 시민단체는 무엇보다도 시민사업을 한다는 실행적 사고가 필요하다.
사업을 벌여 책임감을 갖고 발전시키며 이를 통해 서로의 그리고 광범위한 시민의 필요를 실현해야한다. 이것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을 뜻하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계획을 명확히 수립하고 경영자원을 최적으로 조달, 배분하며 가장 효율적으로 투입하여 전력투구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스스로 기존 제도의 보완물이라는 수동적 발상에서 행정의 효율성과 시장의 수요자논리에 맞서면서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쟁자로서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극복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주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이것을 해결하도록 해야한다.  

2> 욕구를 조직화하기 기본욕구모델로 전환해야한다.
시장의 수요와 필요성에 눈뜨고 귀기울여야 하며, 여기에 머물지 않고 기본적 욕구를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발전시켜나가야한다. 따라서  계몽보다는 '욕구의 수용과 조직화'를 고민하는 DB Marketing, STP Marketing(segmenting, Targeting, Positioning)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활용해야할 것이다. 이와 함께 주민참여의 층위와 수준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한다. 단순히 교육만 하는 것인지 최종적으로 행위양식과 생활방식를 변화시키면서 공동체건설에 동참하게 만들 것인지에 따라 프로그램의 수준과 내용, 질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3) 평가의 중요성
시민활동과 사업을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흔히 공공의 일은 의무나 당위에 의해 정당화되는 사례가 적지않다. 그러다보니 활동과 프로그램의 성과가 무엇인지 불분명한 캠페인성 프로그램이나 책임회피용 활동이 적지않게 진행된다. 활동과 프로그램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과 측정방법이 구체화되면 될 수록 성과를 얻기위한 마케팅도 가능해진다.
즉 평가없는 마케팅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평가기준과 측정방법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도 목표가 명시적이고 구체화되어야 하며, 이럴때만이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다. 모든 일이 공정하게 평가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특히 좋은 일일수록 평가받아야 성공의 가능성이 높고 그 효과가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 시민운동의 정체성은 <지금, 여기에서>결정되고 확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에 입각해있으며, 미래로 가는 통로이다. 미래에 입각하지 않으면 미래를 잃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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