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말하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2003, 나는 걷는다: 3권 스텝에 부는 바람 (효형출판)

by 사람의숲 2009. 7. 29.
지난 7월 18일에서 25일까지 중국 서안에 머물다 왔다.  물론 중국 사회학회에 참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고, 그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로왔던 시간은 24, 25일 정도였고, 우연히 만난 중국인과 동행하여 병마용과 진시황제릉을 구경한 것이 아마도 언어 소통이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낸 정도이다.  나머지의 시간은 선배 사회학자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편한 시간을 보냈지만, 아쉬운 것은 내 스스로 나의 일정을 만들어 다니는 시간을 지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2007년 7월 16일 밤에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발생한 거리에서 폭행을 당한 사건 때문에 다니는 것을 주의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터키의 이스탐불에서 시작하여 4년에 4번에 걸쳐 한번에 3천여 킬로미터, 3-4개월씩 잡아서 중국의 서안까지 도보 여행을 한 사람이다.  그는 기자 생활을 은퇴한 후에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비행청소년들을 치료법으로 도보여행하는 것을 제안하여 이를 돕고 있는 사람이기도 한다.  그의 여행기를 읽고 읽노라면, 천편일률적인 서안 여행인 진시황, 한나라, 아방궁, 당나라, 양귀비, 대안사, 섬서 박물관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헌에 등장하는 그 지역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일단, 그가 본 감숙성과 섬서성 장면을 읽어 보았다.  대략 2002년 6월 18일에서 7월 10일정도에 일어난 일이다.  거리로 치면 한 800킬로미터 정도 될 것이다.  대개 하루에 평균 30Km씩 걷는다고 보면 된다.  감숙성의 란쩌우를 출발하여, 큰 길이 아닌 철도길이 난 위원, 무산, 감곡, 대수를 거쳐 서안에 이르는 길을 택했다.  지도로 보면 느끼지 못하는 데, 그 길은 가파른 산길이 나있는 곳도 통과해야 하나 보다.  두 바퀴 달린 작은 수레에 짐을 싣고 스스로 끌고 다니고 있다. 

나는 걷는다 3 - 10점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옮김/효형출판

 
저자는 걷는 여행을 스스로를 발견하는 길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서구문명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한다.  380쪽에 위원(위하가 발원하는 곳이라는 뜻인것 같다)에서 만난 호텔 여성 종업원이 한말 "부모님은 현명하세요.  자식은 부모님 말씀을 들어야지요"를 듣고는 이렇게 기록한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내 아이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어야 겠다.  부모가 현명하다고 믿는 것!  정말이지 중국 사람처럼 되어야겠다"(380쪽).  서양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단지 연금 생활자로서 사회적 부담이 된다고 가르치는 사회, 지혜는 나이든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로 표출된 것으로 나타나서 이를 제도적으로 배울수 있다고 믿는 사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걷는 여행에 대해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오히려 혼자인 나를 발견하고 싶다는 바람일 것이다.  그런 고독 속에서는 사회생활의 거짓과 탐욕은 줄어들고 내적인 진실함은 더욱 커지니까.  또한 세상의 광대한 신비로움 속에서 더욱 존재감을 느낄수 있고, 기적적인 만남의 시간에 참여할수 있다는 것, 그러니 여행은 끝이 없어야만 하고 삶 그 자체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426쪽).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다.  아마도 기자 생활에서 우려나온 것이기도 하고, 남들과 대화하지 못하므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초원의 바람은 결토 말을 필요로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서로 닮았다.  공허와 침묵의 친구들.  우리는 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공간을 계속 휩쓸고 다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427쪽).  그는 서안의 종탑을 마지막 종착지로 정했고, 그 옆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물론 지금도 그 종루도 있고, 호텔도 있다.  그리고 서안의 서문으로 들어선 그 지점에는 서역으로 떠나는 낙타탄 상인들의 모습이 동상으로 지금도 있다. 

이은진/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옮깁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