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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잉게 숄, 아마도 1940년대초,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자의 죽음

by 사람의숲 2006. 3. 17.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잉에 숄 (푸른나무,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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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조금 오래된 책이기는 하지만 한번 읽어보았다.  요즘 책읽기는 옛날 책 인데도 새롭다. 내가 모르면서 읽었던 것들을 다시 알게되어 그렇다. 

나는 2002년-2003년에 독일 오스나부룩에 1년 머물면서 학교 연구실을 같이 쓰던 교수와 독일의 역사에 대한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1870년경에야 독립된 나라로 등장한다.  비스마르크 정권 시기이다.  그 전에는 대독일 소독일의 논쟁은 있었지만 독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체제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독일 민주주의 역사가 영국이나 불란서에 비해 매우 부족한 나라이다.  따라서 독일은 민주주의의 후진국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 역사에서는 1848년의 공화정 움직임, 1918년 1차대전 패전후의 바이마르 정권, 나치 치하의 반 나치 운동을 독일인이 민주주의 운동을 한 역사적인 기록으로 삼고 있다.  그중 마지만 3번째 반 나치 운동에 대한 하나의 기록이 바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자의 죽음의 내용이다.

독일 뮌헨, 어찌보면 나치의 본 고장에서 20대 전후의 의대학생들이 반 나치 삐라는 뿌리는 운동을 한다.  물론 이들은 2차대전이 끝나기 전에 잡혀서 처형당한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사건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게 만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백장미단의 나치 운동,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나치는 자신들을 반대하는 인사들을 7-8천명을 처형하였다고 한다.  독일을 다시 보게 된다.  우리는 독일하면 나치의 만행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으나, 반 나치운동으로 수 천 명이 희생당한 사건을 보면서 독일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다시 평가하게된다.  1919년 3.1독립 운동이 반 나치운동 정도의 희생을 치룬 것과 비교해보아도 그렇다.

어떤 평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자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고 의사들을 다시보게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의사들도 그런 용기가 있다니.  신기할 수 도 있다.  우리의 현실에 빗대어서 보면.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아프카니스탄의 지진 피해를 구호하기 위해 파견되어 일하는 젊은 의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무 과도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체게바라도 의사가 아니었던가?  나는 여기서 조금 이상하게도 안철수 의사를 떠올린다.  그는 컴퓨터의 병을 고치기 위해 변신하였으니까.  체게바라는 사회의 병을 고치기 위해 게릴라 전술을 펼쳤다.  오토바이로 아르헨티나를 출발하여 평원과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는 그의 영화 장면들... 그리고 그가 남긴 볼리비아 산맥에서의 게릴라 일기들... (2006.3.17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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