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정보사회연구소 주관, NGO아카데미 6강좌 (마지막)
2001년 11월 15(목) 오전 10시 - 오전 10시 20분, 각자 경험 공유하기
오전 10시 20분 - 오전 11시 20분, 강의 
 오전 11시 20분 - 정오 12시, 질의응답

참석예정자: 정경순(팔룡, 운영위 총무), 김금필(팔룡, 보조교사), 정애란(봉곡, 실무자), 박갑태(봉곡, 운영위원), 김광섭(여좌, 실무자), 최성희(봉림, 동화모임 회장), 이정화(반지, 동화모임), 이은진(사림, 실무자), 김명숙(사림, 자봉), 김진숙(중앙, 자봉), 박영숙(중앙, 자봉), 이은주(사파동성, 자봉), 이경옥(사파동성, 자봉), 박삼순(사파동성, 자봉), 이지연(사파동성, 자봉), 안해자(사파동성, 자봉), 김미호(의창, 이용자), 김순하(의창, 수서모임회장), 박선희(의창, 실무자), 김선진(사파, 실무자), 김수지(용지)


I. 주민운동이란

가. 우리는 주민이다.
주민 = 거주하는 사람
누가 주민인가?주거에 직접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들
주민운동을 이끌고 참여할 사람들 = 주거에 대한 이해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화폐, 교육, 자연환경, 인적환경), 가정 살림을 책임진 사람들(주부), 실제로 집에 오래있는 사람들(비경제활동인구: 주부, 경제활동을 끝낸 사람들, 유아, 학생층)
주민운동 = 거주의 환경, 조건을 공동체적인 속성이 있는 (인간적인 환경)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

나. 주민운동의 동기

모든 사람들이 내 방, 우리 집, 내 가족만을 보살피고 지킨다면, 그네들이 사는 마을과 도시는 누구도 돌보지 않는 곳으로 전락하여 조만간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 사유영역은 비록 안전하고, 쾌적할지 모르지만 내 집 앞 골목길은 아이들을 내보낼 수 없을 만큼 위험하고, 가로와 도시공간은 황량하며 살벌하기까지 한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과 도시의 모습이지 않은가? 

1. 생활환경을 개선하거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동네의 환경 수준을 높이기 위해 꽃길 만들기, 골목 가꾸기, 차 없는 골목 만들기, 공원 만들기 등을 전개하고 있으며, 문화나 교육, 취미생활, 여가활동 등에 관한 새로운 욕구를 공동으로 충족시키기 위하여 주민 공용공간을 만드는 경우이다.
2. 상점가에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 기존 상점가 인근에 대규모의 현대식 매장이 들어섬에 따라 기존 상권이 쇠퇴하게 되자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 (가로환경 개선, 차 없는 거리, 이벤트 개최)이 이들 상점가에서 전개되고 있다. 
3. 생활환경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어린이 통학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진단하는 경우도 있으며, 시민단체나 전문가 또는 행정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이 결속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 주민운동의 행위자들

1. 주민 (주민 조직체, 리더): 이 가운데에는 행정이나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진 경우, 그리고 주민이 먼저 시작하고 난 후에 행정이 참여하여 지원한 경우가 있다.
2. 시민단체: 시민단체가 각종 정보를 제공하거나 상담,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통해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를 지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를 다시 세분하면 시민단체와 주민이 함께 생활환경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을 행정에 요청하거나, 주민과 시민단체가 생활공간 안에서 함께 자체 활동을 진행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3. 행정(행정조직, 공무원): 행정 측에서 먼저 주민참여형 사업을 시작하거나 주민에게 사업을 제안하는 형식, 또는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주민을 적극 참여시키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4. 전문가: 전문가가 행정과 주민 사이에서 중간역할을 수행하면서 주민을 의견을 반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II. 주민운동의 필요성

가. 거주의 황폐화 = 공동체의 와해, 국가 권력과 시장에 의한 토지의 상품화, 공동체적 영역(의료, 주택, 최소한의 생계, 교육, 도서대여, 비디오대여, 노래방, 술, 춤, 만남의 공간, 자연재해, 경제위기)의 상품화
공동체의 회복(인간성, 도덕성)은 동시에 이기심에 저항하는 것 + 토지 침탈에 대항
제도적 위기에 대응하여 개별화된 상품화된 보호방안이 아닌, 공동체적인 자율적 보호망을 구축한다.

나. 사회교육센터의 지향점
정보, 교육, 문화를 통한 마을 공동체 형성:인식, 사고를 바꾸어서 믿음의 인간관계, 협력적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

김필두, 2000. 4. 24, "외국의 사회교육시설"
독일의 사회문화개념: 사회전반의 의사소통 확대라는 시각
외국들은 하나같이 경제사회적으로 격변의 과정을 겪고 있었을 때 문화의 집을 건립

도서관 설계의 기본원칙 (전세중, 1995. 12. 23, "마을도서관 설립에 따른 준비작업"): "자료를 많이 소장하기보다 자유롭게 열람하고, 만나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서가는 벽면을 이용하여 5천 권 정도 비치할 수 있도록 하면 되고, 열람과 만남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중앙공간을 최대한 확보한다".


III. 주민조직화 방안

가. 단계적 관점
주민조직화의 요체 = 주민 연결망의 발견과 회복, 확장
발견 전략 = 일상적 주민 만남의 고리를 발견하는 것.친밀한 주부들의 만남을 사회교육센터에 끌어 들이는 것.
회복전략 = 일상적 만남을 공동체적 만남으로 바꾸는 것.주제의 바꿈(일상과 친교에서 공동체와 연관된 공적인 영역으로의 확장), 만남의 방식을 바꾸는 것(장소, 시간).물론 이 단계에서 만나는 주체들과 이들이 만남 주제를 일치시키는 과제가 등장한다.즉 주제의 공유는 물론 이들이 절박하게 문제로서 느끼고 해결을 추구하는 주제를 발굴하여야 한다.
확장 전략 = 무관심 층들이 관심을 보이고, 기존의 연결망에 새로운 연결망 고리로서 포함되며 아울러 주제의 확장을 고려한다.

나. 전략적 접근
지도자의 발굴: 기존의 연결망 핵심인자를 발견하는 것.잠재적 능력을 갖춘 그러나 자신의 연결망을 갖지 못한 주민을 발견하여 사회교육센터에서 새로이 만들어 나가는 방식도 가능하다.지도자는 연령과 성에 구분없이 (청소년, 주부, 노인도 가능)
주제의 발견: 처음에는 일상적 요구들.취미, 교육, 교양 (개인적 관심) -> 소음, 악취, 식수, 하수, 경관, 자녀교육의 공적인 대응(학교운영위원회, 급식, 자율학습, 잡부금 등), 도시계획, 쓰레기, 대중교통(요금, 노선), 주차장, 통행로 보호 (마을차원의 관심) -> 도시계획, 공청회참석, 의회방청, 행정정보공개청구, 작은 권리찾기, 일상적 마을 화폐화 요인 감시와 기록 (제도적 해결방안 모색)
상호 의사소통의 기회와 장소를 마련: 사회교육센터를 거점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즉 사회교육센터내의 전화, 복사기, 인터넷, 정보제공, 공적 서류 작성, 지역내 정보소개 등으로 도와 준다.사회교육센터 내에 모임별로 메일박스(연락처)를 마련해 준다.
법률적 또는 제도적 도움: 다른 지역의 비슷한 모임을 소개하거나 정보 제공, 사례소개, 인적 교류, 전문적인 도움 정보연결


IV. 사회교육센터의 과제

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인간적인 상호작용(말, 행동, 몸짓), 인간적인 환경(약간의 소란함, 무관심과 관심의 조화)
차이와 창의성, 개성을 인정하면서 공동체를 강조
인간적인 관심 = 공동체적 관심 = 아이들, 노인들, 약자에 대한 관심 = 상호 부조, 어려운 일에 대한 관심(병, 노인부양, 자녀교육)

나. 조직내부의 문제

실무자의 안정적 근무:
황한식, 2000. 10. 25, 주민자치운동의 주체
공헌한 만큼 발언권, 비합리적 연고주의-패거리문화 (지연 혈연 학연 등 연고주의) 지양, 올바른 원칙을 세워야

김봉연, 2000. 11. 23, "사회교육센터의 실무자는 지역사회주민의 참여와 개발을 위주로 해야 한다."
지역사회구성원과 공존의식, 의사결정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권한을 주고, 융통성있고 열린 사고로 임할 것이며, 공정한 판단으로 신속한 의사결정, 끊임없는 관리능력의 개발, 팀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키울 것

김영혜, 1999. 12. 8, 주민운동에서 교육운동의 배경
"교육운동은 기획, 실천, 평가, 후속교육의 순환적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

연구소 2000년 2. 26. 상반기 수련회 안내문
"지금 연구소는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나의 기로에 서 있다.그런데 정작 그 기로에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관성화되어 가는 자신을 보면 짜증이 나고 주민들이 변화를 요구하며. 새로운 것을 목말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애써 못 본 척하고, 그러한 요구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하여 자신없어 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혼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우리는 한편으로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믿으면서도, 의심하고 오해한다.그래서인지 싶게 나의 마음을 열지 못 하고, 나의 고민을 나누지 못한다.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일까?"

다. 사회교육센터 기존 조직에 대한 평가

박태성, 2000. 10. 25, 토론
"다양한 모임들이 고착화 성향을 보인다. 더 생기고 파생되는 것이 안 된다."기존의 조직이라고 연계하여야...

차성수, 2001. 2. 24,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역별 조직, 각종 이익단체의 지역조직, 학연관계나 지연관계 등의 폐쇄적 사적 일차적 집단들도 어떻게 네트워크를 형성할 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개방성이 보장될 때 지역내의 다양한 관심사가 노출되면서, 지역주민들의 참여에너지가 고이는 저장소이자, 새로운 방향으로 지역을 변화시킬 도관이 될 수 있다.

김수자, 1999. 12. 8, 7년의 활동을 돌아보며, 
"금샘이 주민문화운동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단순동호인 조직이나 취미모임 또는 친목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소시민적 사고와 학연 같은 연고주의 등으로 2년 전 함께 하던 회원의 일부가 금샘을 떠나게 된 것은 지금도 아쉬움이 크다.지역내의 1차적 집단인 단순동호인 모임과의 사소한 오해가 금샘 본연의 취지를 퇴색시키려 할 때는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

V. 지역주민운동의 구체적 내용
크게 주거지역(아파트단지, 일반주택가, 재개발 또는 재건축이 진행되는 특수한 성격의 주거지역 등)과 상업지역(상점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곳에서 전개된 구체적 활동내용이 어떠한가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세분화된 유형으로 다시 구분할 수 있다. 

가. 아파트 단지: 주민 공용공간 만들기 (도서실, 체육시설, 회의실, 기타 문화공간), 외부환경 가꾸기 (꽃길 조성, 화단 정비, 수목 식재, 벽면녹화, 생울타리 조성), 공동육아 또는 어린이 공간 만들기 등으로 구분된다. 

나. 일반 주택가: 차 없는 골목 만들기, 어린이 통학로 개선, 골목 가꾸기 (꽃길 조성, 화단 내놓기, 벽면녹화, 벽화 그리기, 담장 허물기), 공원 만들기, 마을환경 조사 (마을지도 그리기, 대기오염 조사, 녹지 실태조사, 가로환경 조사, 통학로 교통여건 조사) 등으로 구분된다. 

다. 상점가: 주로 특색 있는 상점가 거리를 가꾸기 위한 다양한 활동 (차 없는 거리 조성, 문화공간 조성, 가로시설물 정비, 간판 또는 쇼윈도우 정비)이 전개되고 있고, 주민들이 나서서 마을환경을 조사 (인사동 역사문화탐방, 어린이 눈으로 인사동 살펴보기)하거나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경우와 같은 특수 유형도 일부 있다. 

VI. 사례

동기와 전개과정, 주민조직과 리더십, 외부의 지원여부, 행정의 대응방식 등을 정리해 본다.

가. 아파트 단지에서의 마을 만들기 사례

 흔히 '아파트 공동체 운동'으로 지칭되는 다양한 양상의 주민활동이 여러 아파트 단지에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여가활동이나 운동, 사회교육 등에 대한 다양한 주민수요를 주민조직 차원에서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단지내 지하주차장이나 상가건물의 일부를 문화교실, 도서실, 에어로빅 교실과 같은 '주민 공용공간'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사례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 밖에도 아파트 단지 외부공간을 가꾸거나 음식물 퇴비화 같은 녹색아파트 만들기 활동을 실천하는 경우 또는 단오축제나 문학의 밤과 같은 단지내 주민행사를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1. 올림픽선수촌아파트 : 지하상가를 주민공간으로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의 A상가 지하에는 주민과 행정당국이 협력하여 만들어 낸 주민문화센터가 있다. 1992년에 설치된 이곳 문화센터는 에어로빅과 챠밍 디스코, 단전호흡과 같은 건강 프로그램과, 가요교실 같이 주부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문화센터가 설치되기 이전에 이 곳은 분양되지 않은 채 비어 있었는데, 주민조직인 '오륜동 새마을 부녀회'가 주도하여 상가 건물에서의 청소년 비행문제를 예방하고 단지 내 스포츠센터의 공간부족 및 비싼 비용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비어있는 상가를 주민 문화공간으로 개조하여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문화공간으로 이용하던 것도 잠시, 서울시가 지하상가를 매각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문화공간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때까지 활발하게 이용해오던 문화공간을 계속 이용하길 원했던 주민들은 송파구청에 이 공간을 매입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송파구청에서는 주민들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지금의 상가를 주민 복지차원에서 구입한 뒤 구청 문화센터로 활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현재 이 공간은 송파구청에서 소유하고 있지만 부녀회가 분기별로 구청에 임대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위탁관리하고 있어 사실상 주민문화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구청의 문화센터로 전환된 이후 구청에서는 이 곳에 마루 바닥을 깔아주고 전기시설, 방음시설, 냉·온풍기 등을 설치하였으며 지금도 수시로 점검하고 관리해주고 있다. 부녀회에서는 문화센터 실내의 유지와 관리를 맡아 시설물이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당번을 정해 청소와 각종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곳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도 대단한데, 문화센터가 너무 좋아 이사를 못 가겠다는 주민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비어있는 지하상가를 주민문화센터로 만들어낸 부녀회의 활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파트 단지 전체의 환경 가꾸기로 확대되고 있다. 봄과 여름엔 팬지나 베고니아를, 가을에는 국화꽃을 아파트 단지와 주변 가로에 심고 관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사무소 앞에 시계탑을 건립하여 주민들의 편의를 돕고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단지 앞 버스정류소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노인들을 배려하여 정류소에 벤치를 설치하였으며, 깨끗한 우유팩을 수거하여 휴지로 보상해주는 알뜰시장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2. 중계동 주공아파트 : 녹색 아파트 만들기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주공 4단지에서 진행되었던 녹색아파트 만들기는 시민단체인 서울 동북여성민우회가 녹색서울시민위원회의 시정참여사업에 공모하여 그 지원을 받아 추진된 경우로, 주민조직보다는 시민단체에서부터 시작된 마을 만들기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동북여성민우회는 지역에 들어가 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환경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녹색아파트 만들기 운동을 구상하게 되었고, 1998년 녹색아파트 만들기 운동을 위한 사업 대상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 단체에 소속된 회원이 살고 있는 주공 4단지를 대상지로 결정하게 되었다. 
녹색아파트 만들기의 주요 활동으로 녹색아파트 강좌 개설,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농장 견학,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사업, 어린이 환경학교 개설 등이 진행되었다. 녹색아파트 강좌는 노인정에서 7회에 걸쳐 열렸는데 총 20여명의 주민이 참석하였으나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인원은 5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단지내 주민과 시민단체간의 사전교감이나 유대가 크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녹색아파트 강좌와 함께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농장견학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15명의 주민이 참석하여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농장을 방문하였다. 이후 주민들의 참여 하에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사업을 직접 실천에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시민단체가 추천한 농장에 대해 주민들이 신뢰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사업은 진통을 겪기도 했다. 
단지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환경 프로그램인 어린이 환경학교는 '아파트에서 환경친화적으로 놀아보기', '우리 아파트는 내가 지켜요', '우리 마을 생태탐사'를 주제로 3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중계동 주공4단지의 녹색아파트 만들기는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의지가 미약하고, 주민조직의 뒷받침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시민단체의 주도로 시작된 마을 만들기 활동이 지속되지 못하고 일회성 행사에 그친 경우라 할 수 있다. 

3. 부산 금샘마을 : 아파트 울타리를 너머선 마을 만들기
 금샘마을이란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 선경3차 아파트 800세대, 우성 아파트 1,200세대, 럭키 아파트 500세대 등이 이웃해 있는 5,000세대 규모의 전형적인 중산층 아파트 단지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행정구역 명칭이나 건설업체의 이름보다는 금정산 자락에 살고 있음에 더욱 긍지를 느끼는 이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부르기 시작한 마을 이름이다.
금샘마을에서 마을 만들기가 시작된 것은 1993년 1월의 일로, 마을 뒷산을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10가구 19명이 모여 마을 사람 스스로 더불어 함께 사는 생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 따라 '금샘 사랑방 문화클럽'을 창립하면서부터이다. 
금샘 사랑방 문화클럽에서 추진했던 주요활동으로는 단오잔치와 문학의 밤을 비롯해 각종 문화강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행사는 단오잔치로, 1993년부터 시작된 이래 매년 6월에 꼬박꼬박 실시되어 1999년에는 7회째 행사를 열었다. 선경3차 아파트의 넓은 광장에서 열렸던 첫 해 행사에는 400명의 주민이 참석했고, 두 번째 행사에는 700명, 세 번째 잔치에서는 2000여명이 참석하여, 점차 지역적 차원의 축제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학의 밤 행사 역시 1993년 이후 매년 11월에 빠짐 없이 개최되고 있다. 초창기 문학의 밤 행사에는 김지하 시인을 비롯하여 이해인 시인, 도종환 시인 등 유명인사들이 참여하였으나, 최근에는 일반 주민들의 창작품을 발표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왔다. 매주 두 번씩 열리는 민속춤 교실을 비롯해 노래 교실, 국악 교실, 연극교실, 사진교실, 청소년 교육 등이 개최되어 주민들의 교양을 높이고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금샘마을에서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문화활동은 주민들에게 정서적인 만족감을 줄 뿐만 아니라 지역의 경제적 가치 상승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금샘마을 마을 만들기를 이끌고 있는 부산대학교 황한식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복덕방에서 말하기를, 제가 사는 선경 3차 아파트는 값이 엄청나게 올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통해 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마을에 긍지를 갖게 되고, 문화 덕분인지 아파트 값이 떨어질 때는 다른 아파트에 비해서 덜 떨어지고, 오를 때는 더 올라가는 현상이 실제로 생깁니다. 공동체도 이루고, 돈도 벌고 좋은 일이지요." 
금샘 사랑방 문화클럽은 1997년 5월부터 부산광역시와 금정구의 위탁을 받아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6년전 10가구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금샘 사랑방 문화클럽'이 현재는 지역단위의 마을 서비스센터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을 만들기의 힘과 성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금샘마을 사례는 더욱 깊이 음미해볼 만한 사례다.

나. 일반주택지

 단독주택지에서의 마을 만들기는 주로 집 앞 골목이나 장소에 대한 주민들의 특별한 관심과 애착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한 주민이 집 앞에 화분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되어 온 골목이 꽃길로 꾸며진 경우라든가, 주민 한 사람의 담 허물기에서 시작된 골목 가꾸기가 이웃으로, 동네로, 전 도시로 확산되어간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골목길을 되돌려주기 위해 '차 없는 골목'을 운영하거나, 통학로의 개선을 모색하는 경우도 일반주택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마을 만들기 사례중의 하나다. 

1. 대구 삼덕동 : 골목 가꾸기 실험
 대구시 중구 삼덕동3가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여느 골목길과는 사뭇 다른 골목이 한 곳 있다. 골목에는 작지만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그곳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논다. 이 곳이 바로 1999년 한 해 동안 마을 만들기와 관련해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골목 가꾸기 실험의 현장이고, 단독주택의 담을 허문 뒤에 새롭게 태어난 '골목공원'이다. 극히 평범한 주택 한 채가 이러한 명소가 되었던 것은 이 일에 헌신적으로 매달린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민운동가인 대구 YMCA의 김경민 국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1996년 10월에 대지 100평 규모에 30평 정도의 마당과 점포가 딸린 2층 단독주택에 세를 들어왔다. 장인 소유의 주택을 통째로 빌려 살던 친구가 김천으로 귀농하자 그 집에 전세를 들어간 것이다. 이 곳으로 이사와 살면서 김경민 국장은 단독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담을 확 트면 정원도 넓게 보이고 햇볕도 많이 들어와서 참 좋을 터인데…. 더구나 어차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지내는 것을 생각하면 이 공간을 우리 부부만 즐긴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점차 이러한 생각은 구체화되어 1998년 11월초에 드디어 담을 허물게 된다. 담을 헐면서 그가 가졌던 생각은 골목공원이 있으면 동네 주민들, 특히 주부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대화도 나누고 아이들이 와서 놀 수도 있어 삭막한 골목이 나름대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담을 허무는 작업은 단순히 담을 없애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담을 허문 뒤에도 개인공간이었던 마당을 골목공원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공원의 진입구와 동선 및 배치시설 등을 이용자 중심으로 조성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담을 허물어 공원을 가꾸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곳에 여러 가지 내용을 채워 넣고자 했다. 주민이 공감하고 함께 즐기며, 서로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던 것이다. 꾸러기 환경그림대회, 담장 벽화 그리기, 녹색가게 및 초록화실, 인형극 공연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꾸러기 환경그림대회는 1998년 11월 초부터 15일간 동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환경그림을 접수받아, 11월 21일부터 28일까지 골목에서 전시하고, 시상식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김경민 국장에 따르면, 꾸러기 환경그림대회를 계기로 주민들은 이웃과 자녀의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골목의 존재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전시기간 동안만큼은 골목길의 주차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었다고 한다.
골목 이곳 저곳에 벽화가 그려지기도 했다. 골목공원 바로 앞의 청소년 쉼터 담장에 스톤 스프레이를 사용한 암각화가 그려졌고, 동네 아이들이 주워온 병 뚜껑으로 녹색가게의 벽면에 병 뚜껑 벽화가 그려졌으며, 골목 반대쪽 입구의 유기농산물 매장 벽면에는 녹두, 참깨, 밥풀 등으로 제작한 벽화 '밥은 하늘입니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밖에도 톱밥에 본드와 물감을 섞어 제작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동네 꼬마들이 그린 마을지도벽화를 골목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으며, 계속해서 마을 주민의 동의를 얻어 벽화 그리기 작업이 확대되고 있다.
녹색가게와 초록화실도 꾸며졌다. 그 동안 방치되어 있던 5평 정도의 점포를 수리해서 물물교환 형식의 재활용 가게로 만들어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접촉 통로로 활용하였고, 주택의 지하층에 개설한 초록화실 또한 아이들과의 접촉을 통해 주민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 밖에도 골목공원에서 인형극이나 연극을 공연하여 골목공원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골목공원에 대한 관심과 파장은 점차 확대되어 대구시민들과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마침내 대구지역 내 시민사회단체와 대구시가 공동으로 전개하는 '대구사랑운동 시민회의'의 주요사업으로 담 허물기가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담을 허물겠다고 신청하면 담을 허무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대구시에서 처리해 주고, 허물고 난 뒤의 조경을 위해 조경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자문위원회도 구성되었다. 조경에 필요한 나무는 대구시 임업연구소에서 일부 제공한다는 원칙도 세워졌고 담을 허무는 데 필요한 인력은 공공근로요원을 투입해서 해결하고 있다.
대구시의 이러한 대응은 대형 건물, 공공건물, 개인주택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담 허물기 운동을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삼덕동 3가 동사무소가 담을 허물어 주민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휴식공간을 갖추게 되었고, 골목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던 남창수씨 소유 주택도 담을 허문 뒤 또 다른 골목공원을 조성하였다.
1999년 12월초까지 '대구사랑운동 시민회의'의 사무국인 대구시 내무국이 각 구청을 통해서 담 허물기를 원하는 공공건물이나 기관, 개인의 신청을 받은 곳은 모두 105곳에 이른다. 담을 허문 곳은 서구청, 남구청을 비롯해 12개 동사무소, 경상감영공원, 국채보상기념공원, 경상여상, 경북대병원, 계명대 동산의료원 등 21곳에 이르며, 담을 허물겠다고 밝힌 곳도 동구청 등 행정기관 37곳, 경북대 치대 병원 등 공공기관 5곳이며, 개인소유의 건물도 모두 47곳에 이르고 있다. 

2. 사당동 양지공원 : 주민의 손으로 만든 공원
 서울시 동작구 사당3동 220-6번지 일대에는 다른 마을공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좁고 기다란 모양의 공원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여느 공원과는 다르다. 주민들의 땀과 애정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바로 양지공원으로, 주민과 행정과 전문가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함께 계획하고 시공하였으며, 조성이 완료된 후에는 행정과 주민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1,870㎡(567평)의 도로부지로 구획되어 있던 곳으로, 도로가 다른 곳으로 개설되면서 공공용지로 10년 이상 방치되어 있었다. 방치된 공지를 주민들은 마을공원으로 이용하고 있었으나 시설이 불량하고 관리가 소홀할 뿐만 아니라 쓰레기 무단투기 및 청소년 우범지대로 인식되어 동작구청에서는 이곳을 정비하여 공용 주차장으로 조성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주차장을 만들 경우 골목길에 빈번하게 드나들게 될 차량통행으로 인해 어린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매연, 소음 등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여 주차장의 설치를 적극 반대하고 나선다. 인근 주민 약 200여명이 참여한 '주차장 설치 반대위원회'가 조직된 것도 이 무렵이다. 주차장 설치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동작구청에서는 대안으로 대상지의 일부를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나머지를 마을 마당으로 조성하는 대안을 제시했으나 주민들은 이에 대해서도 반대하였고 결국 대상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공원계획을 담당하게 된 서울대 농업개발연구소의 김성균 교수는 공원의 설계과정에 주된 이용자인 주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보자는 의견을 서울시에 제안하였으며, 이러한 제안이 받아들여져 양지공원부지가 시범지역으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동작구청과 김성균 교수는 사당3동사무소를 통해 참여를 희망하는 주민대표를 모집하였으며, 이 결과 주민 12명이 참여의지를 표명했다. 주로 주차장 설치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주민들이었다. 
공원계획은 1998년 2월부터 1999년 7월까지 약 17개월 동안 기본구상단계에서 실시설계 단계까지 4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계획이 마련되기까지 총 6회에 걸쳐 워크숍이 진행되었으며 주민이 의견을 제출하면 주민의견을 적극 반영한 대안을 마련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계획과정에서 전문가와 동작구청은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였으며, 주민들이 제안했던 정자, 어린이 놀이터, 꽃밭 조성 등이 모두 계획에 반영되었다.
주민참여는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주민들은 특히 워크숍을 통해 제기했던 자신들의 의견이 공사에 반영되는 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주민과 시공업체가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간의 이해를 거쳐 마을마당의 착공에서 준공까지 주민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었고, 시공현장에의 '주민감독관' 배치로 이어지게 되었다. 
시공과정에서도 양지공원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심을 높이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도출되었다. 다목적 운동공간의 계단에는 주민들 30여명이 참여하여 찍어낸 손바닥 도장 문양이 새겨 졌으며, 청소년 공간 주변에는 사당중학교 학생 20여명이 참여하여 그린 그림을 도자기판으로 만들어 게시하였다.
때로는 시공과정에서 주민들이 계획변경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행정과 전문가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매우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예로 이미 공사가 끝난 마을마당 진입계단을 주민들 요구로 위치를 옮겨 다시 공사한 일이 있었다. 자기 집 앞에 바로 계단이 있어 번잡해지고, 주차하는 데도 불편하다는 주민의 의견 때문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고민 끝에 계단을 옮겨 공사해주도록 건설업체를 설득하였으나 공사를 다시 할 경우 추가 공사비가 소요된다는 이유로 건설업체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주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구청의 성의를 배려하여 결국에는 공사변경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완공된 공원은 현재 주차장 설치 반대운동을 벌였던 주민들 20여명으로 구성된 '공원자율관리위원회'에서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일상적인 관리나 방범활동을 하고 있으며, 공원의 훼손에 따른 보수 등은 구청에서 실시하고, 공원의 청소 등의 업무는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원자율관리위원회'가 일상적인 관리나 방범활동을 위해 필요한 방범초소 설치, 전기료 등의 비용은 공원주변의 30여 가구 주민들로부터 회비를 모아 충당하고 있다. 

3. 전농동 : 차 없는 골목 만들기
 골목길은 원래 아이들 차지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는 곳도 골목길이었고, 집안에서 머물던 시간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도 또한 골목길에서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골목길은 더 이상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곳, 놀아서는 안 되는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이들 대신 자동차들이 골목길을 온통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골목길에서 맘껏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아득한 기억 속에서나, 아니면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꿈같은 일이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1동에서 벌어졌다. 
1996년 3월 15일 전농동의 한 골목길이 온통 아이들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즐거움은 1998년 가을까지 매월 15일에 계속 반복되었다. 전농1동의 '차 없는 골목 만들기'가 바로 그것이다.
전농동의 차 없는 골목 만들기의 시작은 1996년부터 전농1동 사무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던 최세욱 동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동장은 평소부터 주택가 골목길의 주차로 인해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음을 아쉬워했고, 잠시만이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꿈을 실현해보고자 했던 최동장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던 것은, 동장의 뜻에 공감하고 자신 소유의 공터를 주차공간으로 선뜻 내놓은 이 동네 토박이 오충환씨였다. 별도의 주차공간을 확보하게 되자 1996년 3월부터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을 모두 옮기고 차량을 통제한 뒤 매달 15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내주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동장과 4명의 직원들이 각종 놀이기구와 장비들을 차에 싣고 왔다. 차량통제시설을 설치한 뒤 팽이, 제기, 훌라후프, 굴렁쇠 등의 놀이기구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골목 어귀에는 작은 농구대도 설치해 주었다. 처음에는 나와서 놀라고 해도 아이들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잘 모이지도 않고, 놀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동장과 직원들이 직접 놀이방법을 가르쳐주고 함께 놀아주며 아이들이 재미를 붙이도록 유도했는데,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아이들도 제기차기, 팽이치기, 굴렁쇠 굴리기, 비석치기, 자치기, 고무줄놀이, 줄넘기와 같은 전래 민속놀이에 점차 재미를 붙였고 참여율과 호응이 갈수록 높아갔다. 
주민들의 반응이 처음부터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행사 하루 전에, 아이들 노는 날이니 차를 빼달라는 공고문에 따라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는 하였으나 자신의 집 앞에 주차하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아이들이 모여 노는 소리를 소란스럽다고 하며 싫어하는 주민도 있었다. 어떤 주민은 "아이 학원 가는 시간에 이런 걸 만들어 놓아 애들이 학원을 안가고 거기서 놀고 있다"며 불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주민들의 마음이 서서히 바뀌게 된 것은 막상 자신의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고 최동장은 회상하고 있다. "자기 자식이 자신들이 했던 어린 시절의 놀이를 하며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적 놀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끼리 옛날 이야기를 나누는 훈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주민들의 호응이 높아지면서 활발히 진행되던 전농동 '차 없는 골목' 행사는 1998년 최세욱 동장이 다른 동으로 전출되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다. 상점가, 인천 부평시장 : 문화의 거리 만들기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199번지 일대의 부평 재래시장에는 길이 270미터, 폭 16미터의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조성된 문화의 거리는 쇠퇴해 가는 지역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지역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끈질긴 요구가 얻어낸 값진 결실이다. 
이곳에 문화의 거리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보면, 1990년대 들어 증가하기 시작한 대규모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의 입지와, 부평역 지하상가의 대형화로 야기된 부평 재래시장의 쇠퇴에 자극을 받은 상인들의 위기감 확산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가번영회의 인태연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지역내 젊은 상인들이 모여 '부평시장 문화의 거리 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문화의 거리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지역상권의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문화의 거리' 조성에 뜻을 모은 상인들은 1996년 7월에 부평시장 중앙로를 '문화의 거리'로 지정해줄 것을 구청에 탄원하였다. 그러나 당시 부평구청은 이에 대해 아주 모호한 내용의 회신을 보내왔는데, 100여 개소에 이르는 노점상의 처리문제 때문이었다. 부평은 일찍부터 노점상의 천국으로 알려져 좌판의 권리금만 해도 수천만 원을 넘었고, 이들의 세력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문화의 거리 발전추진위는 1996년 9월까지 7번에 걸쳐 부평구를 비롯한, 인천광역시, 부평구 의회 등에 계속해서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그 결과 그 해 10월에 부평구에서는 상인들의 문화의 거리 조성 요구를 수용하게 되고, 11월에 들어서서 부평구청장과 상인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다음해인 1997년 2월부터 부평시장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3월에는 사업일정이 확정되었다. 1997년 9월에 부평구청에서 번영회가 참석한 가운데 문화의 거리 조성계획안에 관한 설명회가 열렸고, 10월에는 공사가 시작되어 6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1998년 3월에 문화의 거리 조성이 마무리되었다. 문화의 거리 공사가 시작되자 상권이동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인접지역 상인들로부터 항의 소동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문화거리 조성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은 대부분 구청예산으로 실시되었으나 상인들도 6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상점가에 분수대를 설치하는 등 직접 참여하는 활동을 보였다. 
부평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후에도 노점상과 상인과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1999년 1월과 3월 2차에 걸쳐 상인과 노점상, 행정이 참여하는 '문화의 거리 발전추진협의회'를 구성하여 이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참고문헌: 정석, 2000. 10. 12, "마을의 힘, 마을의 꿈" (고양마을학교 강의록)


Posted by 구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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